ㆍ작성자 흰쾨끼리
ㆍ작성일 2017-01-14 (토) 15:22
ㆍ추천: 0  ㆍ조회: 272       
ㆍIP: 121.xxx.37
신 申 가들은 모두 고령의 자손들입니다.




    한국에서 신 申 을 성씨로 쓰는 사람들은 알고 보면 누구든지 고령 申 문의 자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고령이 역사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서기 30년이 되기 전부터이고, 그 때에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취임식을 하던 날에 왕을 추대하던 각간 들이 모여서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구지가 龜旨歌  인데, 그 노래를 부르던 각간들은 가야국의 대표들이었으니까, 그 속에는 고령 申의 조상


    되시는 분도 거기 그 현장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삼국이 형성되기 전이었지마는 그 후에 신라가 강성해 지면서 가야국이 신라에 편입되는 과정에


    서 일반 백성들은 어떨지 모르나 지도층의 사람들은 산지 사방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은 뻔한
 
    결과이겠지요.


    그 때 만이 아니고, 그 후에도 신라에 들어가서 김유신 처럼 가야국의 백성으로서 공을 세워 왕족으로


    편입된 사람보다는 이리 저리 쫓겨서 망명길에 오른 사람이 더 많았을 거고.


    통일신라 후기에도 혼란한 시기에 피난은 계속되고, 후백제를 지나 고려가 건국되던 때도 혼란한 중에


    전국 각지로 흩어진 고령의 백성들은 사는 곳에서 자기의 본적지 고령을 생각하면서 살았겠지요.


    고려가 건국되고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성씨가 주어질 때 쯤 부터 평산 申의 조상 되시는 장절공으로


    부터 그 뒤에 이름에 申을 쓰기 시작하는 아주 申 인물들이 보이게 되는 것은 고령 申 과 관계가 없다


    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면, 바로 이런 문제를 규명하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고령은 한국역사의 시작과 함께 출발한다.


   흥양이 어떻고, 고흥이 어떻고, 이런 말은 아무 필요가 없다.


   고령 申 가라는 건 한국 토종 의 한 자손인데, 여러 난리 통에 이렇게 저렳게 분파되어서


   평산도 되고, 아주도 되고, 여러 본을 갖게 되었으니, 그 연유를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우리가 시조할아바저를 성용 成用 으로 모실 수 밖에 없는 것은


   눈에 볼만한 증거 되는 기록의 상한 선이  거기 까지 되지 않으니, 그런 것이고, 이미 그 전 천여년 간의


  선조님들은 우리 가 알 수 없는 상태로 살다가 가셨다.  그 자손들이 다 申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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