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신흥식
ㆍ작성일 2015-05-08 (금)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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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동자 그 네번째 이야기
문충공은 충청도체찰사로도 일을 하게 된다. 도체찰사라는 것은 임금의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 받아서 그 지역의 업무를 대행하는 자리다. 세조 때 만이 아니고 역대 임금님들의 가장 큰 고민은 세곡을 안전하게 서울로 실어 오는 일이었다. 문충공께서 충청 도체찰사를 맡게 된 배경은 바로 그 세곡을 실어오는 일이 너무나 험난하기 때문에 그걸 안전하게 운행하여 오는 길을 만들어 보려는 의도에서 조정의 중론으로 세조는 그렇게 결정하였다.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그 문제를 잘 해결하는 지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남 지방에서 올라오는 세곡은 배로 서해안을 따라 한강으로 들어와서 마포나루에서 풀어 내린다. 그런데 서해안을 따라 올라가던 조운선들은 지금의 서산 당진 해안을 통과하기가 쉽지 아니하였다. 거기는 바람도 세고 물결이 언제나 높게 일어나는 구간이었다. 현장을 둘러 본 문충공은 우선 안면도에 운하를 만들었다. 안면도는 본래 섬이 아니었다. 태안반도에 연결되어 있는 육지였던 것을 , 문충공의 의견으로 운하를 파서 배가 다닐 수 있게 만들었다. 그 결과 지금처럼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2차공사를 더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람을 피하는 뱃길을 내륙으로 파서 당진 을 지나는 길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였는데, 이런 2차 공사는 수고만 많이 하고 실효가 없어서 사용하지를 못하였다고 한다. 도체찰사의 임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아니한다. 동부 지역에서 올라오는 화물을 어떻게 운반하는 게 좋은 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가지 경로를 찾는다. 그것은 한강의 수로를 따라 뱃길을 만드는 안이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길을 이용한 화물운반을 쉽게 해보려고 내륙의 운하를 고려하였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때 구상하였다는 낙동강과 한강의 연결은 이미 그 당시에 문충공의 아이디어였다. 이런 모든 아이디어에는 청의 동자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분은 수고만 할 뿐 ,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는 것을 사양하였다. 많은 사례들을 보아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성공 13 세손 興 植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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