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병암
ㆍ작성일 2017-04-18 (화)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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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에 깃든 사연

귀래정에 깃든 사연

 

번역문

 

일찍이 들었다. 순창 남쪽에 산이 하나 있는데, 넓고 크고 높다랗게 솟아 산세가 아주 기이하고 대단하다. 구불구불 감돌아 마치 용이 차오르듯 범이 날뛰듯 하다가 수그렸다 불쑥 솟구치더니, 아래로 쑥 내려가 동쪽 봉우리가 되었다. 봉우리 꼭대기는 땅이 매우 평평한데, 신말주(申末舟)가 이곳에 서너 칸짜리 정자를 지었다. 정자의 좌우에는 쭉쭉 뻗은 대나무들이 짙푸르게 우거졌으니, 사시사철 한결같은 절개다. 바람이 불어도 좋고 비가 와도 좋고 달이 떠도 좋고 눈이 내려도 좋아서, 승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운데에 화초를 줄지어 심었으니, 분홍색흰색붉은색보라색 꽃들이 연달아 피고 져서 일 년 내내 끊임없다.

 

원문

 

嘗聞淳之南有山, 磅礴扶輿, 勢甚奇偉蜿蜒低回, 若龍躍, 若虎擲, 若屈若起, 若下而爲東峯峯之頂, 地甚坦夷, 侯構亭三四楹亭之左右, 萬竹檀, 蒼然蓊然, 四時一節宜風宜雨, 宜月宜雪, 其爲勝不一列植花卉於其中, 紅白朱紫, 相續開謝, 貫炎凉而無窮矣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사가집(四佳集)2 귀래정기(歸來亭記)

 

해설

 

14531010일 왕위 찬탈사건이 일어났다.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이 일로 신숙주(申叔舟)는 정난공신에 책봉되고, 영의정에 올라 국정의 최고책임자가 됐다. 그런데 사간원(司諫院)의 우헌납(右獻納)이었던 그의 아우 신말주(申末舟, 1429~1503)가 벼슬을 버리고 순창의 처가로 내려갔다.


신말주의 낙향 배경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세간에 숙주나물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폄하된 형의 정치적 행보에 관한 반발이었는지, 아니면 자의적인 선택이었는지 말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 세조가 불쾌감을 품자, 신숙주는 아우에게 정치적인 복귀를 간곡하게 권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결국 몇 차례 벼슬을 지냈다.


왕조실록(王朝實錄)에 따르면, 그는 14596월 사간원 우헌납, 14613월 예조 정랑(禮曹正郎), 14645월 사헌부 집의(執義)에 제수되었다. 14661월에 대사간(大司諫)으로 승진하였으며, 같은 해 8월에 형조 참의(刑曹參議)로 임명되고, 10년 뒤 14769월 전주 부윤(全州府尹)이 되었다.


서거정의 귀래정기1477년에 지어졌다. 귀래정은 지금도 순창의 남산대(南山臺)에 우뚝한데, 이와 관련한 전설 한 꼭지가 남았다.


당시 신말주는 처고모부 권효(權曉)와 함께 터를 고르는 중이었다. 그들은 남산대와 가잠(家岑) 마을 두 군데를 놓고 저울질하였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가잠은 부()가 보장된 땅이오, 남산대는 귀()가 보장된 땅이라는 것이었다. 권효는 가잠을 골랐고, 신말주는 남산대를 골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각각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아무튼 남산대의 신씨 문중에서는 이후에 이계(伊溪) 신공제(申公濟, 1469~1536)와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1781) 등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래서 순창사람들은 터가 좋은 마을을 지칭할 때마다 반드시 일남산(一南山)’이라고 첫손가락을 꼽았다. 권씨 문중이 들어선 가잠 마을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부촌(富村)으로 일컬어진다.


서거정은 귀래정에서 바라보이는 빼어난 경치를 또 아래와 같이 묘사하였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면, 남원(南原)의 보련산(寶蓮山)과 곡성(谷城)의 동지악(動地岳)이 푸르고 푸른빛으로 엉겨, 서로 공수(拱手)하고 읍()하며 조회하듯 마주 섰다. 그밖에 올망졸망한 첩첩의 봉우리와 길게 뻗은 숲과 울창한 산기슭이 아득한 안개구름 속에서 기묘한 경관을 저마다 뽐내는데, 정자의 앉은 자리에서 죄다 보인다.

강물은 적성(磧城)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꺾였다가 남쪽으로 내려와, 구불구불 넘실넘실 두 골짜기 사이로 나와 다시 빙 돌아서 동쪽으로 흐른다. 광덕산(廣德山)의 물은 용처럼 서리고 뱀처럼 구비 치다가 봉우리 아래를 에두르며, 적성에서 내려온 물과 합쳐진다. 푸른 물이 깊고 맑아 손으로 떠 마시고 얼굴을 비춰볼 만하다.

또한, 시골 마을과 들녘의 언덕이 백 리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누르고 푸른 논밭이 원근에 은은하다. 밭갈이하는 사람소 치는 사람나무하는 사람고기 잡는 사람사냥하는 사람들이 서로 노래를 주고받으며, 유람하는 사람길 가는 사람오는 소가는 말들이 앞뒤로 이어지는 모습 또한 정자에 앉아서 볼 수 있다. [登而望之, 則南原之寶蓮山谷城之動地岳, 攢靑繚碧, 拱揖相朝其他層巒疊嶂長林茂麓, 賈奇眩異於烟雲杳靄之間, 而畢呈於几席之下有水發源於磧城, 北折而南, 逶迤演漾, 出於兩峽之間, 又匯而東廣德山水, 龍盤蛇屈, 環繞於峯下, 與磧水合泓澄綠淨, 可掬可鑑至如村墟野壠, 一望百里, 黃畦綠塍, 隱映遠近耕者牧者樵者漁者獵者, 謳謌互答遊人行旅來牛去馬, 絡繹於前後者, 亦可坐而見也]

 

신말주의 부인은 설백민(薛伯民)의 무남독녀였다. 글도 잘하고, 그림과 글씨에도 능했던 설씨는 16폭의 설씨부인권선문첩(薛氏夫人勸善文帖)을 남겼는데, 1981년 보물 제728호로 지정되었다. 손수 짓고, 손수 썼다. 도합 1,096자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글은 가로 20, 세로 40의 종이 14쪽이다. 나머지 2쪽은 사찰의 채색 그림이다.


이 문첩은 조선시대의 여류 문인이 남긴 필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리고 사대부 집안의 정부인(貞夫人)이 직접 지은 인과율(因果律)에 관한 글이라는 점에서 특별하게 평가된다. 다음은 간추린 내용이다.


1482(성종 13) 봄 어느 날 밤이다. 설씨 부인의 꿈에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일 어떤 사람이 찾아와 너와 함께 착한 일을 하자고 청할 것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되 게을리하지 말라. 너의 복을 짓는 큰 근원이 되리라.” 하였다.


다음 날 아침 과연 부인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약비(若非)라는 승려였다. 그는 산수 절승한 광덕산에 신허(信虛)라는 스님이 초가집으로 지은 작은 절 하나가 오늘에 이르렀는데, 오랜 풍상으로 거의 퇴락했습니다. 지금 이곳을 지키는 중조(中照) 스님의 가장 큰 소망은 절 하나를 새로 짓는 일입니다. 소승(小僧)도 광덕산의 아름다움을 탐내 부도암(浮圖庵)이라는 작은 암자를 세웠습니다. 허나 이 또한 초라하여 오래 보전할 수 없기에, 중조 스님과 힘을 합쳐 새로 절을 짓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저희 역량이 부족해 감히 부인께 시주를 구하려고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부인은 간밤의 꿈을 되새기며 도와주리라 결심하였다. 그러나 소요 경비를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부인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선근(善根)을 짓게 함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마침내 부인은 손수 권선문을 짓고, 절간의 설계도까지 그려 서화첩으로 꾸몄다. 그리고는 약비로 하여금 강천사(剛泉寺)의 복원을 위해 더 많은 시주를 구하도록 하였다. 오늘날 강천사가 자리 잡은 강천산은 1981년 대한민국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광덕산은 이제 강천산의 옛 이름으로 남았다.

 

유영봉

글쓴이유영봉(劉永奉)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주요 저서

고려문학의 탐색, 이회문화사, 2001

하늘이 내신 땅, 문자향, 2001

당나라 시인을 만나다, 범한서적주식회사, 2009

천년암자에 오르다, 흐름출판사, 2013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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