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병암
ㆍ작성일 2017-03-02 (목)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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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11월 24일 ~ 25일 1박2일 고령신씨 대종회 회의록
아래 회의록은 대종회를 발족시키기 위하여 모였던 회의자료입니다. 관심 있으신 종원님들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1954년 고령신씨 종회 회의록 

                                             작성자 : 기호(紀浩)

1. 장소  대전시 인동 신구식(申龜植)씨 댁

2. 시일  단기4287년(1954) 11월 24일(음10월 말일) 
         오전 10시부터 11월 25일 오전 10시 30분까지(1박2일간)

3. 출석인원  24명(33명 구두초청) 
  【백우(伯雨, 영), 충식(忠植), 필휴(弼休, 감), 필휴(弼休), 존식(存植, 영), 규식(奎植), 정휴(禎休), 철휴(哲休, 강), 구식(龜植), 동식(東植), 중식(仲植), 기호(紀浩), 병휴(丙休, 정), 인식(姻植), 학식(學植, 감), 행우(行雨, 순), 은식(殷植, 봉), 성우(聲雨, 귀), 청휴(淸休), 윤식(潤植)】

4. 의장선출  구두호천으로 신백우(申伯雨)씨 의장에 피선

5. 회 의

의장(伯雨)  회의의 기록을 위하여 기호(紀浩) 군을 금번 회의에 서기로 임명하겠습니다. 그러면 앉은 채로 일종의 친목회와 같이 좌담식으로 회의에 들어가겠습니다. 금번 토의할 안건(案件) 중 먼저 만대산 시조산소에 대하여 고령일가에서 그 경과를 보고하여 주시오.

  □만대산 시조산소에 관한 보고

병휴(丙休)  6.25동란(1950년 한국전쟁) 이래 일가 전체의 고심도 불사하였으나, 제일 토지개혁에 의하여 그간 위토 전답(田畓)을 2단보(600평) 이외는 인정치 않게 되어 그것으로는 매년의 경비도 부족해서 곤란이 막심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좋은 대책이 없나하고 청주일가에게 연락하여 문의하였더니, 그 답이 제정된 2단보 이외의 면적은 산지기에게 소작제로 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 뿐 하등의 좋은 해결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선(爲先)하는 일념으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아 가며 오늘까지 토지를 확보하여 왔습니다. 6.25 당시의 곤란은 말 할 것도 없고, 그 다음 해는 드믄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하고, 산지기는 토지개혁 건으로 불평불만이 가득하고, 공산당 관계로 만대산에 보초를 서게 하니 인반인은 신(申)가의 만대산 보초관계로 고생한다고 불평이 자자합니다. 또한 산지기는 공비와 내통한다는 혐의(嫌疑)를 받아 혹자의 난폭행위(亂暴行爲)에 견디다 못하여 산지기 집에서 이사를 하고 보니 가옥은 자연히 황폐되어 버리고 산소의 상석은 파편(破片)으로 파괴되었으며 축대는 붕괴되어 죄송할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6.25 당시에 산소 축대 하부에 누군가가 시체(屍體)를 암장(暗葬)한 것을 발견하여 종중(宗中)에서 그것을 파고 보니 시체가 3구나 발굴되었습니다. 그러니 속히 전부를 수리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소작료는 ‘5가마 한 말’로 1년 경비에 충당하고 있습니다. 이상 시조산소에 대한 경과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의장(伯雨)  잘 들어 알겠습니다. 기타 미흡한 점이 있으면 말씀하여 주십시오.

존식(存植)  토지개혁에 의한 2단보 이외는 산지기에게 귀속치 않았습니까? 전라도는 원만(円滿)하게 처리해서 위토를 배정하여 주었는데 고령이라고 해서 불공평하게 되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병휴丙休)  그래서 고령의 일가들은 청주 일가가 너무도 무심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의장(伯雨)  고령일가 여러분의 그간 처사(處事)에 대하여 대단히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시면 옥과(玉果) 산소에 대하여 경과를 말씀하여 주십시오.

  □옥과 산소에 관한 보고

필휴(弼休)  옥과 산소에 대하여 경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작료 수입은 전부가 ‘아홉 가마(九叺)’인데 제사지내고 여분이 ‘두 가마(貳叺)’입니다. 전기(前期)의 흉년 시는 저축이라고는 없고 현재 금액으로 1만8천원이 보유되어 있습니다.

의장(伯雨)  위토는 얼마나 됩니까?

필휴(弼休)  200평 1두락으로 21두락입니다.

의장(伯雨)  논(沓)입니까? 밭(田)입니까?

필휴(弼休)  논입니다. 밭은 약 1,000평 내외 있습니다.

의장(伯雨)  잘 알았습니다. 다른 말씀 없으면 광주(옹정리)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光州 옹정리에 관한 보고

학식(學植)  해방 이후에 많이 황폐해 졌습니다. 산지기를 나무란 나머지 내쫓고 바꾼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큰 일을 저지르지 않아 위토는 보존하여 왔습니다. 현재 기금이 30,000원이 되어 있는데, 그것으로 문간개수(門間改修)를 할 계획으로 목재를 사서 현재 운반하고 있습니다. 정조(正祖) 15석(石)으로 매년 비용을 예산 잡고 있습니다. 논이 28두락이고 밭이 30두락입니다. 산지기를 불러 문책을 한 즉 광주부(光州府) 중의 자손들 의견이 이왕 도벌(盜伐)로 인하여 임목(林木)이 없어질 것이면 차라리 미리 벌채를 해서 저축하여 둠이 좋을 것이라 해서 했다 합니다. 그 금액이 1,050원 잡혀 있습니다. 또 위토 전답에 대해서는 자손들이 양파(兩派)로 갈려서 일파는 토지개혁 대로 자손들이 분배하자는 등, 일파는 과거대로 위토로 보존하자는 등의 다소 시비가 있었으나 결국은 종전대로 확보하여 왔습니다. 광주부(光州府) 중에는 각 파의 자손이 거주하고 있으나 유사(有司)를 둔 일은 없었는데 그 때 이후로 부중파(府中派)라고 해서 유사 2인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종중에서 회장식(回章式)으로 서류를 작성하여 연락하고 있습니다. 그 규칙은 별지와 같습니다. 산지기도 5대째 내려오는 산지기가  있습니다.

의장(伯雨)  잘 알았습니다. 옥과나 광주의 종산 정보수(町步數)는 얼마나 됩니까?

필휴(弼休)  옥과는 40여정보입니다. 

인식(姻植)  광주는 12정보 내에 전(田)이 약간 있습니다.

의장(伯雨)  다음은 양주(楊州)의 말씀을 들려주시오.

  □양주(楊州)에 관한 보고

정휴(禎休)  양주는 일선(一先) 근방이라 6.25 당시로부터 제반사가 더욱 곤란해진 와중에 묘직이는 공산당으로 월북하여 버리고, 공산당 치하에서 위토의 수입은 역적의 재산이라고 해서 몰수한다고 시비가 있었는데 산지기 어머니의 강력한 설득과 동네 거주인(居住人)의 증명으로 무사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제사도 한 사람이 겨우 제관이었었습니다. 지금은 산지기가 없어서 곤란하여 전(前) 산지기의 형(방은정)이라는 사람을 묘지기로 정하고 있습니다. 위토의 수입은 삼일제(三一制)로 하여 연수입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격으로 파괴된 재실을 수리할 예정으로 10,000원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작년 시제 때에 문청(文淸, 청주)에서 5,000원, 평택에서 2,500원을 가지고 음력 7월 말일 경 착수하였으나 산지기의 말이 외사(外舍)도 같이 수리해야겠다고 해서 예산을 잡아보니 재료가 비싸 지금은 30,000원 가량 가져야 하겠습니다. 대지(垈地)가 남의 것인데 대주(垈主)는 매도해도 좋다고 합니다만 평당 80원 호가(呼價) 합니다. 대지가 약 150평이므로 대지가격이 15,000여원이고 수리비까지 하면 총합 45,000원이 소요될 형편입니다. 위토중 답은 745평, 913평, 1,191평이고, 전이 159평, 491평입니다. 약 7년 전 무자년(1948)에는 지독한 흉년으로 위토수입이 없어서 문청(文淸, 청주)자손이 성금으로 시제를 올렸습니다. 위토에 대하여는 파주ㆍ양주 양 지역은 위토회복 등기를 실행중인데 그 기한이 12월 말일 이라고 합니다.
법무사에게 문의한 즉 전(前)등기 보유자는 면장 이장의 증명 없이 직접 회복등기를 재교부하여 주나, 이 건(件)은 토지대장 명의가 여럿 인 고로 인장을 만들 수는 없고 미결로 되어 있어 금번 회의의 결말을 보고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근근히 위토승인신청은 완료되었습니다. 단지 법적 절차관계로 위(位)를 5위(五位)로 해서 절차를 밟았습니다.

충식(忠植)  감찰공 산소의 경과는 어떠합니까?

  □감찰공 산소에 관한 보고

학식(學植)  아무 이상 없습니다.

  □정은공 산소에 관한 보고

병휴(丙休)  정은공 산소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제시대(日帝時代)는 민유림(民有林)으로 되었었는데 해방 후에 면장과 타합(打合)하여 정은공 산소림으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였으나 무상은 안 되고 결국 매입하기로 결정했는데 금액은 90,000원으로 정했습니다. 면적은 21정보 반입니다.

의장(伯雨)  잘 해결되었습니다. 시조 산소의 개사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시조산소 개사초의 건

학식(學植)  급속히 전부를 개수하여야 할 것입니다.

의장(伯雨)  이의없습니까? 이의없으니 개사초하기로 결의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어떤 방법으로 합니까?

병휴(丙休)  축대는 우치석(尤歯石)으로 견고하게 하고 상석은 새로 설치해야 할 것입니다. 자손은 많이 있으나 적당한 책임자가 없어서 일이 진취(進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암장(暗葬)도 우려되니 하부 일대를 견고하게 해야 할 줄로 생각합니다.

존식(存植)  그곳은 떼(잔디)가 잘 사는 곳이니 축대가 무너질 염려는 없으므로 축대는 재래(在來)대로 떼를 입히고, 하부의 암장우려가 있는 곳은 회(灰) 등 기타로 견고하게 함이 좋을까 합니다.

정휴(禎休)  지금 존식씨 말씀 같이 하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매사가 전부 자금인데 기본금이 정립될 때까지는 예산(豫算)을 책정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의장(伯雨)  그러면 사초하는 것은 결정적이나 그 방법에 대하여는 차후 예산이 결정될 때까지 보류함이 어떠합니까? 일반의 이의가 없으니 그렇게 결의합니다.

    □서울소재 종중가옥(장학관) 설치의 건

은식(殷植)  이번 종회를 계기로 해서 일가 전체의 친목 연락이나 후손의 장학을 위하여 서울에다 종중 소유 가옥을 설치하여 전반적인 편의를 도모케 실현하는 것을 건의합니다.

행우(行雨)  너무 범위가 크므로 실천가능성이 박약(薄弱)합니다.

기호(紀浩) 위선(爲先)함도 좋으나 조상의 신령(神靈)이 계신다면 위(爲) 자손(子孫)함을 더욱 좋아하실 것입니다. 은식씨 말씀대로 서울에 장학관(獎學館)을 설치하고 일가 중 수재자녀(秀才子女)를 선정해 재질발휘(才質發揮)케 함을 위하여 조력(助力)해 줌이 대단히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장(伯雨)  그것은 추후로 논하기로 하고 제일 중요한 만대산 산림목 벌채에 대하여 고령일가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만대산림 벌채의 건

병휴(丙休)  벌채를 한다면 산소 부근의 약 10정보는 임목을 보유해야 할 것이고, 그 상부의 산불(山火) 난 지역 20여 정보를 제외하면 잔여 면적으로 80정보는 벌채할 수 있습니다.

의장(伯雨)  벌채하는데 대하여 계획을 세워 본 일이 있습니까?

병휴(丙休)  업자 몇 사람에게 문의하여 본 즉 절차 등 기타 일체를 업자에게 위임하기로 하고, 매 정보당 대금이 20,000원 미만으로 될 것이라 합니다. ―좌중 10여인이 “그렇게 염가가 될 리 있습니까? 부당한 말입니다.”라고 함―

기호(紀浩)  위임업자에게 허가절차까지 일임한다면 정당한 가격은 못 받을 것이니 만대산림목을 조사한 후에 예산을 잡아야 합니다. 훨신 더 많은 돈이 될 것입니다.

존식(存植)  그러면 벌채절차 허가문제는 종중에서 임원을 선정하여 맡기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방법은 추후에 결정합시다. 
임원으로는 충식(忠植)씨, 학식(學植)씨, 존식(存植)씨 3인으로 정하되 현지 답사비용은 벌채완료 후까지 각자 부담 입체(立替)하기로 합니다.

의장(伯雨)  벌채하기로 결정한다면 존식씨 말씀대로 하기로 함이 가하다고 생각하나, 벌채를 단행하느냐 안하느냐를 우선 결의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중 이의가 없으시니 벌채하는 것으로 결의하고, 차후 공사 진행시는 존식씨 말씀대로 실행하기로 하겠습니다. 다음은 묘각 개수에 대하여 마씀해 주시오.

    □묘각 개수(改修) 및 설단의 건

학식(學植)  묘각은 시급히 개수해야 합니다. 산지기도 불편이 많습니다.

충식(忠植)  전번 묘각 수리시에도 위치를 생각하여 할 것을 그냥 해서 불편한 문제가 생겼으니 차후로는 재래의 위치에다 하느냐 아니면 동내에 신축함이 가하냐를 결정합시다.

의장(伯雨)  고령 일가께서 말씀해 주시지요.

병휴(丙休)  금번 고령에서 모사시(謀事時)도 역시 공론(共論)이 있었는데 그 위치에 개수함이 가할 듯 합니다.

의장(伯雨)  산지기의 영농관계나 인부를 구하는 것이나 암장(暗葬) 방지책으로 보나, 또한 산지기를 구할 필요가 있을 시도 편리한 동리 내에 신축함이 훨신 나을 줄로 생각합니다. 

충식(忠植)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 운운하는 것보다 후일 벌체완료후 경제적 여유 여하에 따라 위치 문제도 결정함이 어떻습니까?

행우(行雨)  충식씨 말씀에 찬성합니다.

의장(伯雨)  일반 다수의 의견에 의해서 묘각수리 관계는 벌채완료 후에 결정하기로 결정합니다. 세분(2세 강승, 3세 인재, 4세 사경) 설단에 대하여 토의해 주십시오.

행우(行雨)  설단문제 역시 예산이 있어야 하니 벌채 건 해결 후에 실현하도록 함이 가할 것입니다.

의장(伯雨)  어떻습니까? 이의 없으시니 행우씨 말씀과 같이 벌채 건 해결 후 결정키로 가결합니다. 다음은 옥과 사방문제(沙防問題)는 어떻게 합니까?

    □옥과 산소 보수의 건

성우(聲雨)  사방(沙防)할 장소는 전부 합해서 약 100평가량 되는데 시급히 착수해야 할 것입니다.

의장(伯雨)  사방할 장소의 공사 예산을 편성해 보았습니까?

충식(忠植)  현재로서는 공사대금의 결정액을 알 수 없을 것이니 벌채건 해결 후로 합시다.

의장(伯雨)  이의 있습니까? 없으면 충식씨 말씀대로 결정합니다. 광주 재각문제 건설에 대하여 토의하여 주시지요.

     □광주(光州) 재각 건설의 건

충식(忠植)  문간(재각) 신설의 필요성보다는 산지기의 초가(草家)를 와가(瓦家)로 개수함이 좋을 것입니다.

존식(存植)  그것도 역시 명년도로 연기함이 좋습니다.

학식(學植)  재목을 그대로 두면 변질하여 곤란하니 ㄷ칸만은 시급히 해야 합니다. 초가를 와가(瓦家)로 한다고 해도 그대로 두고서 와가 개수는 불가합니다.

행우(行雨)  ㄷ칸을 신설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재는 잘 이어서 두면 수년이라도 변질되지 않습니다. 이전에 하인들이 사용할 방을 준비하는 것인데 근자에 ㄷ칸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의장(伯雨)  이의(異議)하는 분 없으면 일반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 보류(保留)키로 결의합니다.

     □족보(族譜) 발행의 건

병휴(丙休)  고령(정은공파)은 파보(派譜)로 벌써 인쇄 중에 있습니다.

충식(忠植)  우리 고령신가의 대보(大譜)는 31년 전(1924) 발간 후 아직 실현치 못하였습니다. 31년이라면 한 대가 지났는데 그간 사망· 출생의 변동도 많을 것입니다. 파보로 각기 작성한다면 신가 전체의 씨족관념이 점차 박약(薄弱)해 졌을 것에 대하여 통탄(痛嘆)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대보(大譜)로 하기 바랍니다.

의장(伯雨)  대보발간에 대하여 계속하여 말씀하여 주시오.

충식(忠植)  파보에 국한치 말고 대보로 실현함이 정당하다 생각되니 여러분도 의견을 진술하여 주시오.

병휴(丙休)  대보 발간에 찬성은 하나 지금 시국도 전시와 같이 혼란할 뿐 아니라. 우리 파 문중에서 결의가 되어서 파보발간의 진행을 보게 된 것이니 지금 이 종회에서 대보 운운함은 나 단독으로 결정할 문제가 못 됩니다. 여러분이 기타 의견을 말씀하여 주시오.

충식(忠植)  병휴씨의 말씀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신(申)가 전체의 대보로 하심이 좌중 여러분 어떻습니까? ―좌중 5,6 인이 “찬성합니다.”라고 함―

충식(忠植)  대보는 우리 申가의 일람표와 같습니다. 이번에 대보로 실현할 것을 주장합니다.

은식(殷植)  30년 한 대(代)를 경과하였으므로 대보발간의 필요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실현에 곤란이 막심할 것이므로 각 파는 파보를 한 후에 추후로 이어서 대보를 한다 해도 가할 것이라고 봉례공파에서는 이미 결의가 있었습니다. 대보는 매 책에 4~5백원씩 들므로 비용때문에 곤란해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행우(行雨)  문충공 전체로 한다면 모르나 봉례공파만 한다는 것은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학식(學植)  감찰공파에서도 고려중 입니다.

의장(伯雨)  귀래정공파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성우(聲雨)  대보는 남북통일 후에 서서히 함이 어떻습니까?

은식(殷植)  전에는 흉년(凶年)이었으나 2년을 풍년들었으니 1인당 400원씩의 부담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인당 수천원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행우(行雨)  난시(亂時)도 일단락되고 대보의 필요성은 느끼고 하니 이때에 대보로 실현함이 좋지않을까 합니다. 각자가 자기 파보만 한다면 대보발간의 취지에 배치(背馳)되는 것이니 대보로 실현합시다.

충식(忠植)  대보는 일가 전체의 계통표와 같이 망라(網羅)한 것이니 각기 파보로 분열하지 말고 대보로써 단합하여야 합니다.

정휴(禎休)  다른 파중에는 어떤 의견이 있습니까?

윤식(潤植)  파보를 합한 것이 대보가 될 것이고, 경비도 소수의 제작비보다 다수의 대보로 제작함이 염가로 될 것이니 대보를 작성하여 각파에 분배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의장(伯雨)  각 파에서 파보를 하더라도 추후에 상계만 하면 대보가 될 것이니 장래에 대보를 만든다는 약속 하에 각기 파보를 만들 것이며, 만들더라도 각 파가 동일한 방식으로 출발하여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나 개인의 의견입니다.

정휴(禎休)  두 분의 의견에 찬성은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대보의 경비가 과중하여 대금을 선불한 연휴에 대보를 모셔가게 되었었습니다.  차후도 역시 대금(代金)을 일시불로 불입하여야 하겠는데 거기에 곤란이 막심할 것이니 각 파의 파보를 피차 교환하여 일관하도록 함이 어떻습니까? 봉례공파에서는 37선 이북은 전쟁으로 파보의 구득(求得)이 곤란하게 되었으니 매 호당 500~600원 정도로 매입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파보 이외에는 종중에서 공동으로 매입할  예정입니다.

행우(行雨)  행우의 생각은 대보 이외는 불가합니다.

윤식(潤植)  소수이긴 해도 각 파에서 대보 1부씩만 모셔 가면 되지 않습니까?

행우(行雨)  이전, 즉 과거의 방법과 같이 하면 안 됩니다.

은식(殷植)  3년 후의 대보 실현을 기대하는 것보다 현재 각 파의 파보를 실현한 후 추후로 대보를 실현하도록 함이 타당하지 않습니까?

행우(行雨)  파보는 제외하고, 문청(文淸, 청주) 중에서 장소를 정하여 대보 실현에 착수함이 좋습니다.

의장(伯雨)  파보는 용이하고 대보는 곤란하니 좌중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행우(行雨)  대보를 작성하되 각 파의 요구 수량, 즉 부수(部數)대로 작성하기로 하고, 파보(派譜) 역시 별파에서 요구하는 부수에 의하여 여유있게 부수를 작성하여 피차간에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의장(伯雨)  일반의 고견은 어떻습니까? 이의 없으면 행우씨 발언한 대로 결의하겠습니다.

병휴(丙休)  그러면 우리는 이미 출판중이라 이중이 되는데요?

의장(伯雨)  대보나 파보나 간에 어떤 것을 먼저 하느냐 하는 일종의 사업적 기술문제입니다.

은식(殷植)  보소(譜所)를 두고서 대동보를 하고, 파보(派譜)는 보소로 연락하여 발간하게 함이 어떻습니까?

행우(行雨)  실현 방법으로는 대동보를 우선 선결한 후에 파보를 해야 합니다. 대보 없이 파보는 안 됩니다.

인식(姻植)  파보나 대동보나 간에 한 가지씩 단일적으로 실현함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장(伯雨)  대보와 파보로 양론(兩論) 중이니 다수결로 가결을 정함이 어떻습니까? 다수결 찬성자 거수하여 보시오.
     ―다수결 찬성자 : 16명, 기권자(棄權者) 약간명― 

의장(伯雨)  다수결 가결이 다수이니, 대보찬성자 거수하여 주시오. 
    ―대보 찬성자 16명―

의장(伯雨)  파보찬성자 거수하여 주시오. ―파보찬성자 8명―

의장(伯雨)  다수결 가결에 의하여 16 : 8로 대동보로 하기로 결의합니다. 기타의 사항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시오.

     □장학회 및 위선사업의 건

은식(殷植)씨  이 번 친목과 위선(爲先)을 위한 회합에 찬동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손들을 위한 장학회를 조직하는데 절대적인 필요를 느낍니다. 계획을 수립한 후 기금을 종중에서 갹출(醵出)하여 서울에 기숙사 같은 연락장소를 구해 놓고 자녀의 경비절약과 편리를 도모하는 한편, 일가중의 수재(秀才)들을 위하여 그 재질의 발양(發揚)을 조력하여 주는 좋은 계획을 말합니다.

행우(行雨)  찬성은 합니다마는 그 실현은 차후 종회시(宗會時)로 연기하고 싶습니다.

윤식(潤植)  금일 종회에서 위선(爲先) 관계의 결의는 전부가 보류(保留) 일방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나의 의견으로는 각 파는 각자 종중에서 상의하여 임목벌채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각 종중의 성금으로 실현하게 함이 타당할 줄로 생각합니다.

의장(伯雨)  각자 의견을 말씀하시오.

행우(行雨)  모든 문제가 만대산 벌채 후에 상의할 문제입니다.

     □대보(大譜) 실현의 건

청휴(淸休)  대보를 만들기로 결의가 되었으면 그 실현방법으로 사무집행의 위치 내지 각 부서를 정함이 제일 급선무가 아닙니까?

존식(存植)  파보는 혹파(或派)에서는 이미 실현중이니 가급적 협의하여 실천에 옮기게 함이 좋을 듯합니다.

행우(行雨)  이 문제는 귀래정공파에서만 같이 행동하여 주면 타파는 문제없습니다.

의장(伯雨)  대보가 안 될 경우, 문충공파에서 단독으로라도 대보를 실현할 예정이었습니다. 저녁식사 시간이므로 휴회합니다. ―오후 5시―

―오후 8시 회의 재개― 


철휴(哲休)  금일 회의의 경론(經論, 전반적인 토론)에 있어 경제적 문제로 인하여 대국적 원칙인 대보발행을 제외하고 파보만으로 실현하겠다 함은 대단히 유감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소장파(小壯派)에서 조금 전 별석(別席)에서 고려해 본 바, 결국 경제적 문제이니 만큼 만일 전체적으로 안 된다면 우리 문충공파에서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대보는 기필코 실현하여야 하겠습니다. - 좌중 다수 찬성 -

철휴(哲休)  대보 실현의 비용문제에 대하여 타파(他派)에서 대보가 필요하다면 그 필요한 부수에 따른 대금만 지불하고 대보만 모셔가게 하십시오. - 일반 찬성 -

의장(伯雨)  지금 철휴씨 말씀에 일반 전체의 찬성으로 결의된 것만은 시인하겠습니다. 그러나 문충공파 전체의 결의가 필요하게 되며,  또한 문충공파 만의 결의 여부도 역시 문제가 아니니까 나 개인의 의견만은 찬동합니다. 그러나 안건의 성격상 문충공파 전체 의견 여하에 따라 결의함이 지당(至當)한 줄로 생각합니다.

동식(東植)  파보 단독발간 운운은 일가 전체와의 결열(決裂)을 조장(助長)함이니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대보로 발간해야 합니다.

기호(紀浩)  문충공파 만의 결의가 필요하다면 차후 문충공파 만의 결의를 한 후에 할 것이나, 그것은 문제 삼을 필요 없이 申가 전체의 대보 발간을 원칙으로 삼고 진행하기로 하되, 별석에서의 철휴씨가 말씀하신 대로 대보발간에 대한 비용을 적극 협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철휴(哲休)  대보 발간의 비용을 현재로는 추측할 수 없으니 금액으로 단언하여 말할 수는 없으나 종이 내지 인쇄에 대하여는 여하히 하든지 우리 소장파와 협의하여 실현해 볼 각오이니 기타의 준비만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의장(伯雨)  그와 같이 할 수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됩니다.

철휴(哲休)  좌중에서 대보 비용 문제로 우려하실 필요 없이, 각 파에서는 대동보에 필요한 수단만 수집하여 본부로 보내주시고, 각 파에서 필요한 부수(部數)에 대한 대금만 지불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좌중모두 찬성 -

의장(伯雨)  지금까지 중요한 대동보 발간에 대하여 아직 미결이었는데, 재정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시인하고서 차후 대보를 발간하느냐 안하느냐의 가부를 결의하여야 하겠습니다. - 좌중전체 발간 찬성 -

의장(伯雨)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습니다.

철휴(哲休)  차후 사업추진에 대한 각 부서의 대표를 선정하여야 합니다.

중식(仲植)  본부 장소는 중앙지역인 대전시로 정함이 좋을 것입니다.
             - 좌중 “대전시가 좋습니다”라고 함 -

의장(伯雨)  장소는 대전으로 정함을 결의하고 각 부서의 임원은 어떤 방식으로 선정할 것입니까?

중식(仲植)  각 파에서 대표 2인을 선출한 후 그 대표가 협의 결정함이 어떻습니까?

의장(伯雨)  도유사(都有司) 1인, 부유사(副有司) 2인을 선출하고 장재(掌財, 재무)를 선정하십시다.
―좌중 협의 후, 도유사는 백우·행우씨 양론(兩論) 중 행우씨의 의견으로 아래와 같이 결정함―
  도유사  백우씨
  부유사  행우·성우씨

철휴(哲休)  도유사와 부유사 이외의 부서는 유사 3인에게 일임함이 어떻습니까? - 좌중 찬성 -

의장(伯雨)  가결합니다.

오후 10시 폐회

다음 날 오전 9시 각 부서 책임자 발표

총무  충식
교정  필휴, 존식, 규식, 정휴
재무  철휴, 구식, 동식, 중식, 기호
감인  병휴, 인식

수단 유사(收單 有司)의 결정

-. 수단 유사의 총책임자로 은식씨를 정한다.
-. 감찰공파 수단유사는 필휴씨로 정한다.
-. 정은공파 수단유사는 병휴씨로 정한다.
-. 암헌공파 수단유사는 청주 필휴씨로 정한다.
-. 기타 임원이 필요 있을 시는 도(都)ㆍ부유사(副有司)가 선정한다.

이상을 발표한 후 좌담식으로 협의하여 아래 각 항(項)을 결의하다.

1. 수단 작성시 과거 적서(嫡庶) 구별표였던 ○표를 제거할 것
2. 지파에서 종손행사(宗孫行事)하여 오던데 대하여는 구보(舊譜)에       따라 준행(準行)할 것.
3. 수단 작성시 처가는 처부조(妻父祖)에 국한하여 기재할 것.
4. 수단 작성시 여서(女婿)에 대해서는 외손까지만 기재할 것.
5. 출산ㆍ사망의 기재는 수단(修單) 형식에 따를 것.
6. 과거에 누락되었던 일가를 신규로 수단에 기재할 때는 이를 시         인(是認)하되 수단유사(修單有司)의 책임으로 당사자의 정도에 적      당한 찬조금(贊助金)을 납입하게 할 것.
7. 각파의 대동보소로 수단을 수집하는 기한은 음력 명년(1955) 1월     말일로 정한다.

오전 10시 30분 폐회

기록자의 소감

  종회를 마친지 한 달이 넘도록 준비관계로 회의록 등사가 지연되어 죄송합니다. 이번 종회(宗會) 시에 여러 어른들이 말씀하신 바를 기호(紀浩)의 입장으로서 감히 어찌 평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차후 회합시에 다소의 참고가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당돌함을 무릅쓰고 몇 자 소감(所感)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대동보 운운의 족보 자체가 양반의 신분증 같이 생각하여 오던 구태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며, 申가의 계통과 근본을 알 수 있는 일종의 성서(聖書)같이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대보(大譜) 간행의 필요를 느꼈을 것이며, 차후 3~4십년 후에도 역시 발간되기를 후손들에게 바라는 바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물질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역행하여 고유한 동양 도덕과 우리들의 씨족관념은 첨차로 박약(薄弱)하여 짐이 막아낼 수 없는 세태가 되고 있는 실정(實情)인즉, 차후 3~40년 후의 후진들이 위선(爲先)의 사업이나 족보 발행의 성업(聖業)을 계승 실현하게 하려면 우리는 이번에 申가 전체의 계승적 사업체를 규모적으로 수립하여 후손들에게 위촉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번 종회 시에 윤식씨가 말씀하신 바와 같이 전쟁으로 황폐된 위선사업에 대한 일체 경비는 당연히 자손들이 기본금 또는 성금으로 수행될 성질임에도 불구하고 경비 전부를 만대산 벌채이익 획득 후로 종결짓고 말았으니 이를 객관적 입장에서 생각하여 볼 때 만대산에 임야가 산불(山火)로 소실(燒失)되었다면 위선의 사업은 어찌 되었을 것인가? 또는 산림의 소유가 국유화 될 법령이 만일에 발포될 시에는 위선의 사업은 중단되어야 할 것인가? 자연히 우려되는 바입니다. 그리고 기왕 종회의 결의가 만대산 벌채에 중요한 귀결을 짓고 말았으면, 우리는 적정한 인물을 선정하여 벌채사업에 관한 허가 기타 수행상 일체의 계획을 수립한 후 고령 일가를 중심으로 시급히 착수하게 함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둘째, 이번에 발간하는 족보나 행장(行狀) 등의 기사는 순한문으로 하지 말고 후진들이 해득하기 용이하게 한문과 한글을 섞어서 발간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바이며, 대동보 경비문제에 관해 철휴씨의 성의와 용기에 대하여는 우리는 무한한 사의(謝意)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철휴씨 자신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바는 이번 종회의 위신과 존엄성을 깊이 생각하여 시종일관 유종의 미를 거두게끔 축원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은식씨가 건의한 장학회 운운 문제는 그 의의를 타진치도 않고, 그 안(案)을 묵살하고 만데 대하여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인간 사회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투쟁 일방으로 계속되는 것은 철리(哲理)로 되어 있음을 자타가 공지하는 바입니다. 그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강해야 하고, 강하려면 알아야 하고, 알려면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그 배우는 사람의 경제적 주위환경이 원만해야 하는 것이니, 장학회 건립 여부의 문제가 申가를 강하게 하여 줄 수 있는 직접요소가 된다는 것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보갑제(保甲制)』는 타성(他姓)이 집성(集成)한 부락에서 선출된 특재(特才)를 최고학부까지 보내는 경제적 조건을 부락에서 책임지는 대상(對象)으로 그 출신의 역량은 그 부락의 행복을 위한 사업에 기한부 헌신하는 것을 우리는 이지적으로 이를 인용하여 우리는 우리 신가 중 특재를 배양하여 위선사업이나 신가 전채의 행운을 위한 조직체를 건립하여 앞날의 대비가 되도록 실현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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