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
ㆍ작성자 신윤수
ㆍ작성일 2012-01-09 (월)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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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이요정공묘소에 대한 진실과 왜곡
  저는 작년 4월 19일 [문경 이요정공 묘소에 대한 진실과 왜곡]이란 제목의[특별기고문], 이장당시의 사진 몇 점과 과 함께 별첨 내용의 편지를 회장님께 보내드렸지만 아직까지 회신이 없습니다. 아마도 중간에 훼실 되거나 망실된 것 같습니다. 혹여 누군가 인위적으로 폐기시켰다면 문젯거리로 삼을 수도 있는 중대 사안입니다. 그래서 다시 보강하고 가필하여 회장님친전으로 다시 보내드리오니 합당한 답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2012. 1. 10.   -允秀 배상-

          尊敬하는 啓植 會長님께!!

  高靈申氏 全 宗員의 滿場一致로 推戴되신 회장님께 眞心으로 祝賀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는 南楊州 一牌洞 鳳頭뫼라는 곳이 고향으로서 幼. 少年期를 지내온 北伯公派 文景 二樂亭公의 17대손 允秀(壬午正月 生)입니다.

   80년대 중. 말경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당시 高靈申氏宗約會 사무국장으로 계시던 鳳齋公派 祺浩공(저의 養家 再堂叔이십니다.)의 권유로 巖軒會(당시 동수회장님) 貞洞회의때 처음으로 참석한 뒤 몇 번의 모임이 있은 후 해외근무 등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25여 년 간 宗事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2007년 9월 15일, 鳳齋公派 英浩(대종회 신임감사 )아저씨는 70년지기 죽마고우로서 함께 평택 문충공 文學碑 除幕式에 다녀온 뒤 北伯公派 和秀회장님, 相浩 신광흥산(주)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종친을 만나면서 종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새 족보 발행을 계기로 旣存譜에 부실하게 기록된 우리 선조님들의 자랑스런 事蹟들을 보완하고 바로잡아 한글화 했으며 누락된 많은 종친  들을 찾아내어 入譜하였으며;.   

  <선조님들의 國寶級 珠玉같은 詩文集[高陽世稿][高靈世稿]原本이 안타깝게 일본에 있습니다. 필사본이라도 들여오도록 도와주십시오.>사료발굴위원회 慶植종친명의 대종회홈페이지 사랑방 실록실 177번 내용을 우연히 읽어본 저의 작은 女息이 재작년부터 千辛萬苦 끝에 2회에 걸쳐 3월말, 모두 들여와 현재 [松軒文化財團]에 보관중인데, 족보 구입비에 보태 十匙一飯으로 경비를 모아준 우리 문경이요정공자손들의 갸륵한 정성도 담겨져 있습니다.

  생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下世하신 문경 이요정 할아버님의 遺骸를 460여 년 간 남양주 금곡종산(일명; 큰산소갓)에 모셨다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다시 33년간 동두천시 醒齋公 宗山에 矮小하기 그지없게 모셔옴으로서 항상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화수회장님의 [北伯公墓域聖域化事業]과 宗意와 함께 이루어져 二樂亭공과 配位 貞敬夫人朴氏, 11세 判決事公과 配位 淑夫人任氏, 12세 孝의 旌閭를 받으신 加平公과 配位 貞夫人李氏를 遷葬하여 지난 4월 5일 未時(13시02분-15시02분)에 북백공묘 階下에 모시면서 생전의 人品에 相應한 묘역으로 해드렸습니다. 문화재급인 신도비, 비갈, 망주. 문인석등도 모두 옮겨와 복원하였습니다.

     고령신씨 三相臣의 한 분의 뜻 깊은 遷葬모시는 행사에 회장님께서는 화환까지 보내주시며 축하해 주셨고 많은 종친들이 永眠을 지켜주시어 자손의 한사람으로서 무한한 고마움을 드립니다.


   저는 신화수 회장님 뜻에 부응하여 古宅에서 신화수회장님과 며칠간 寄食하면서 兄(北伯公 第1子 金堤公)(北伯公 第2子 二樂亭公)자손들 간 所通하는 人間美를 느꼈고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崇祖精神을 읽었습니다. 協同하는 참 모습도 체험했습니다. 士大夫 家門은 무언가 다르다는 自負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동두천 이요정공 할아버님墓所가 墟墓>라는 악의에 찬 풍설이 전해져온 사실에 切齒腐心해온 저는 이번 이요정공 할아버님을 위시한 3위의 선조님들의 破墓, 收拾, 入函, 遷葬, 下棺, 封墳造成등 전 과정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이요정공의 聖體(齒牙)를 가슴에 안고 감격하며 눈물로 용서를 빌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위대한 어른에 대한 歪曲된 풍설이 이 시점에서 [眞實된 確證]임을 회장님께서 정의를 내려 주십사하는 부탁으로 필을 들었습니다.


   1. 큰산소갓의 굴곡진 歷史

   예전의 큰산소갓은 누구나 下馬揖遜(말에서 내려 예를 표함)하고 지나갔다는 정승가문의 표상이었다고 합니다. 격랑의 시기에 平封이 되고 문관석 등 석물을 땅속에 묻어야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곳은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듯이 엄연한 460년간의 문경이요정공 金村里 宗山이었습니다. 어려서 어른들의 벌초 길에 쫓아다녔던 곳이요, 下校길에 學童들에게 [옛날 정승 할아버님 산소]라고 자랑하던 곳이요, 宗財가 訟事에 휘말려 이를 지키고자 선친을 비롯한 종친들이 勞心焦思하셨던 곳입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30여 년간 동두천 貞簡 醒齋公 선영으로 옮겨 모시기 전 까지 큰 어른의 幽宅이었습니다. 그런데 4-5년 전부터 <이요정공 原 묘소가 남양주 군부대내에서 失傳되어 동두천 묘소는 墟墓>라는 風說이 世間에 떠돌기 시작하더니 2008. 10. 9. 문충공 할아버님의 시향을 마치고 호연회 회원들의 경기북부 선조묘소 참배 스케쥴 버스에 동승하여 동두천으로 향하던 중 이요정공의 生前의 行蹟을 소개하는 팜프랫 마지막에 <이요정공의 동두천묘소가 허묘다.>라는 단어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시기별로 거론하면서 <허묘가 아님>을 해명했으나 그 진실을 알리는 종친은 신필수 사무국장을 포함한 20여명 정도였습니다.

   幽宅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하고 유해를 이리저리 옮겨 모신 죄를 짓고 살아온 후손들 가슴에[허묘라는 대못]을 박았습니다. 제가 진실을 찾기 위한 險路를 自請하고 나섰습니다.


  2. 歪曲의 진원지를 찾아 호랑이굴 속으로

   2008년 말, <이요정 할아버님에 관한 원고를 보내주면 제 92호보(2009. 3. 25.발행)에 실어주겠다.>는 宗秀 宗報편집위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모처럼의 왜곡이 진실로 밝힐 기회라서 당시 이장을 주관한 종친들의 경험담과 제가 어릴 적부터 선대어른들 로부터 들어왔던 문경이요정공의 행적들과 함께 당시<동두천으로의 이장상황>을 상세히 적어 送稿했습니다만 그 이듬해 종보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2009. 4. 4. 서초동 암헌회 모임에 참석에서 宗秀 편집위원에게 종보에  실리지 않은 이유에 대한 유감을 전하는 과정에서 가벼운 언쟁이 있은 뒤, 저는 무시당한 기분으로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관계 종보편집인 앞으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 二樂亭公은 高靈申氏의 三相臣의 한분으로서 혜원공과는 格이 다르다.

   * 2段만 할애해 주어도 메시지가 충분히 전달될 텐데, 紙面에는 온통[바람의 화원]이야기와 作家로부터 謝過를 받아냈다는 회장님의 功績만이 面面마다 여지없이 게재되어 있더라.

   * 회장님의 인사말은 每報에 실림으로서 식상한다. 年初 1회면 족하고 더 하실 말씀이 있으면 각종 모임에서 피력하면 된다. 그 면엔 자손들소양교육이 나 역사공부 자료나 싣는 편이 낫다.

   * 이요정공 허묘 풍설이 떠돈다. 진원지가 대종회가 아니기를 바란다.


   편지가 대종회에 전달된 후 돌아오는 반응은 불쾌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전화로 출두하라는 사무국장이란 사람은 一言之下에 <허묘의 진원지가 대종회가 아니기를 바란다. 는 의미가 무어냐? 그 發說者를 대라.>는 추궁과 함께 이미 와 있던 申宗秀 위원은 <派間에 분쟁을 일으키려드는 짓이냐?>는 등 도리어 XXX이 성내듯 일방적으로 한마디 던져놓고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무뢰하다는 생각과 함께 처음 들른 [대종회]라는 곳은 <죄인취조기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올 곳이 못되는 곳>으로 첫인상에 각인 되었습니다.


   회장님께 불려간 날은 3일 후 금요일,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나서 묘소에 대한 實證的인 근거로 말씀을 드렸지만 저의 논리는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회장님 말씀은, “40여년 전  申大植공(수호씨 부친) 회갑 때 <군부대 안에서의 실전>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동두천 묘소가 허묘>다.” 라고 하셨습니다. 신대식공, 신영수공(서울경제신문회장역임) 집안과 저의 집안과는 선대부터 친형제같이 지내오던 친척간인데 일관된 자기주장에 저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더하여 <자네가 뭘 아느냐?> 는 식의 무시까지 당하고 나왔습니다. 그리곤 대종회장은 <종보편집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말로 여운을 남기셨습니다.


  3. 70년 지기 우정에 금이 가버린 안타까운 현실

   宗秀와 저는 선대 때부터 앞뒷집에서 살던 70년지기 동생뻘 종친입니다. [선조의 행적]을 종보에 담아 주겠다며 자청한 그의 선의에 제의가 제 3자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離間되어 피차간 어색한 관계로서 하루아침에 우정의 금 갈라진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서로 외면하고 불신하는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젠 자존심마저 허락하지 않아 곁으로 다가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로지 옛날이 그리울 뿐입니다. 


  4. 저질의 교재, 후손교육에 얼마나 득이 되었는지요.

   고령신씨대종회에서 주관한 후손교육에  2009년도 경기북부의 종원자격으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초등학생 소풍가는 기분으로 버스에 실려 도착한 그곳 첫날의 2교시교육, [후손교육교재]를 받아본 순간 모두들 희희낙락했지만 저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고 당장 뛰쳐나와 상경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밤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 이튿날 교육과정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재에는 우리 고령신씨의 유일한 삼상신의 한 분, 문경이요정공의 행적(24쪽11행부터19행까지)이랍시고 쓴 내용들입니다. [특별한 선조]편 [文衡]으로 분류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문형으로서의 그 많은 행적을 다 제쳐두고 마치 시정잡배끼리 싸우며 원수를 찾아가 죽인 것으로 묘사 된 부분에 분통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전략)···둘째아들로 佔畢齋 金宗直의 제자로 左議政(토씨가 빠짐) 역임했다. 부친 북백공이 이시애의 반당에 의해(맞서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비명(순국한)에 간 것을 원통히 여기던 중 그 잔당이 경성(한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그를 주살했으나···(중략)··· 후에 예문관, 홍문관, 대제학과 좌의정에 올랐다. 묘는 失傳되어 동두천시에 있는 가족묘지(정간성재공선영)設壇이 있으며, 비석(신도비및 비갈)을 찾아 옮겨 세웠다.”


   온전한 상식과 사고방식을 갖은 사람이 기술한 것이라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무식하기가 그지없습니다. 문맥이며 토씨하나 제대로 가리지 못한 이런 모욕적이고 반인륜적인 내용이 대명천지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당시 대종회장님을 비롯한 사무국장등 대종회 간부, 지역종친회장등 많은 분 들 있는데서 진행자에게 강력히 항의해 보았지만 지금까지도 누가 썼는지 책임지는, 사과하는, 한 사람 없었습니다.


   우리 문경 이요정공 할아버님의 거룩한 행적들은 왕조실록이나 비문에 나와 있고 젊은 학생들의 학.석.박사 논문에까지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 대종회 지적능력은 이정도 밖에 않되는것 같습니다. 그 교재는 박물관을 건립하거든 영구히 비치하여 본보기로 삼아달라고 문제의 문항들을 표시하여 송헌문화재단에 기증했습니다. 혹여 他姓들이 볼까봐 부끄럽기 한량없지만 자성의 계기로 삼아달라는 메시지입니다. 


   과연 이런 후손교육이라면 차라리 시조이하 상계선조님 시향에 교통비로 지원해서 청소년을 포함한 자손들을 많이 모으는 방법이 정서적으로나 숭조사상을 심어주는데 효과적이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북백공 시향에 언제나 성황을 이루는 것을 보면 물질 앞에 무한히 약해지는 것이 인간인가 봅니다.



    존경하는 계식회장님!!

   전임회장님으로서 발설하시면 않되는 허묘발언에 대해<종보에 사과성명이라도 내주십사>또는 <동두천 時祭에 참석하여 헌관자격으로 절이라도 올려 주십사>하는 요구편지가 <버릇없는><철부지><상종 못할>놈이 되었고 신철우 교수님의 고발사건에서 내내<야비하고 분란 일으키는 놈>으로 매도되었습니다. 申弼秀조차 저에게 이유를 알 수없는 “미친놈” 육두문자까지 해댔습니다.


   “함량모자라는 방손 입초사에 감히 위대하신어른이 오르내리다니,”

저는 할아버님의 聖體를 收拾하면서 특히 치아를 직접 가슴에 안고 회한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신관식 전회장님은 이유막론하고 사죄의 뜻으로 문경이요정 할아버님 시향에 헌관을 자청하고 헌작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심신이 자유로우실 것이며, 인과응보의 대가가 반드시 따를 것입니다.

  

   이 시각이후 위선적이고 무뢰하게 욕해대던 종친이 대종회에 있는 한 써놓은 [특별기고문]은 당분간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화합하고 단결되고 남을 존중할 줄 아는 밝은 세상이 되는 날 정중히 요청할 것입니다. 

   집안에서 흘린 낟알이라 곧바로 주워 담아야 한다는 좌우명을 머리에 새기면서 우리 문경이요정공 할아버님 묘소에 대한 풍설은 반드시 바로 잡고 마무리해야겠다는 다짐에는 변함없습니다.

  거룩하신 우리 문충공 할아버님의 찬란한 행적이 왜곡이라는 그늘에 가려 오랫동안 빛이 바랬던 것처럼 악의적인 왜곡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과격하고 버릇없는 내용이 있더라도 널리 용서하여주시기 바라면서 두서없는 필을 줄이겠습니다.

                    2011. 4. 19.

                   

        북백공파 문경이요정공 17대손 允秀 올립니다. 

* 별첨은 참고삼아 보시라고<特別寄稿>文景 二樂亭公(諱; 用漑)묘소의 왜곡과 진실>의 일부내용을 발췌했습니다.

 <特別寄稿>文景 二樂亭公(諱; 用漑)묘소의 왜곡과 진실

  

<寄稿者 註> 고령신씨 삼상신의 한 분이신 문경이요정공의 유택을 이리저리 옮겨 모셔야했던 안타까운 과거사···<중 략>···역사적(歷史的)증언록(證言錄)으로 남기고자한다.

 訃聞 上震悼 輟朝三日 賻贈有加 遣承旨 弔其孤 用明年二月甲申 禮葬于楊州

  부 문   상 진 도  철 조 삼 일  부 증 유 가   견 승 지   조 기 고  용 명 년 이 월 갑 신   예 장 우 양 주

 東金村里乾坐巽向之原

  동 금 촌 리 건 좌 손 향 지 원

····<중  략>···· 졸기(卒記)의 일부분을 발췌한 내용으로서 예장 모셨던 유택(幽宅)은 460년 가까이 남양주시 금곡동 산 135번지 [고령신씨 큰산소갓]이었음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옛날부터 일컬어온 楊州東 金村里(양주 동쪽에 있는 금촌리)는 일제에 의해 인근 행정구역과 통합되면서 <渼金面 金谷里>라는 ····<중  략>····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재편되어 지금에 이른 곳이다.


  [큰산소갓] 즉 금곡종산(金谷宗山) 건좌(乾坐)에는 10세 문경이요정공의 쌍영을 비롯하여 11세 판결사공(判決事公 諱; 瀚), 12세 가평공(加平公 諱; 汝柱), 13세 우송공(友松公 諱; 橃)이 계하에 차례대로 합영으로 모셔져 있었고 그 아래에 18세, 19세, 20세, ····<중  략>···· [신정승가 산소갓]으로 불려오기도 했다.


  또한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4Km지점 백봉산 기슭(현재 평내동 아파트촌 안) [늘을종산]인좌(寅坐)에는  ·····<중  략>···· [문경이요정공의 영향력]은 한양동방전역(漢陽東方全域)까지 미치고 있었음이 증명되는 대목이다.


   ····<중  략>····과 [큰산소갓]의 문무인석(文武人石)석수(石獸)석등(石燈)들이 모두 도난과 도굴되고 말았다.


   ····<중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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