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
ㆍ작성자 대한민국31
ㆍ작성일 2019-07-14 (일) 16:49
ㆍ첨부#1 20190712_숙주나물의_탄생.pdf (196KB) (Down:1074)
ㆍ추천: 0  ㆍ조회: 549       
ㆍIP: 122.xxx.27
숙주나물에 대하여 !

친일 민족반역자들이 독립혁명가들로 이루어진 고령(산동) 신 씨들을 멸문지하로 만들고 대한독립을 요원하게 해서 자신들의 안위와 영달을 꾀하기 위하여 자행한 숙주나물의 진실을 찾아서 !

한국검찰일보 취재본부장 신 환우

H/P.010.9218.0800

 

1910829일 경술년 국치(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날)일로부터 우리의 강토에 있던 대한제국의13도는 멸망을 한 것이며 우리 민족은 찬탈국인 일제의 식민으로 전락을 하게 된 것으로서 우리에게는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1910829일은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광복과 독립(운동)혁명의 개시일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한 건국의 시작 일인 것이다.

, 나라가 있는 것과 업는 상태의 차이점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다.

 

이날로부터 투쟁과 혁명으로 일관하는 피로 점철된 애국선열들의 우국진충에 의하여 1919411일 중국 상해에서 국호 대한민국과 민주공화제를 기초로 한 국가의 헌법체계를 갖춘 명실상부한 정부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으며 건국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여기에서 현재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 시작은 의회민주공화제를 최초로 명문화한 191774일 대동단결설언이며 이 선언은 예관 신 규식 선생에 의하여 조 소앙(용은) 선생이 작성한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 독립(운동)혁명사에서 그 유명한 3대 선언문이 있으며 예관 신규식 선생에 의한 대동단결선언문 과 대한독립선언문.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문 들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잊혀 질 수없는 필수불가결한 문서들로서 현재 국가 문화재로 등재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후대에도 길이 보전될 것이다.

 

그리고 1945815일 광복이 되는 날까지 민족의 구심점이요 횃불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 역할을 했으며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1919411일 임시정부에서 부여한 국가의 명칭 국호 대한민국과 임시정부의 헌장에 의한 민주공화제와 의회민주제가 이어진 것으로서 우리나라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3.1운동(혁명)의 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받는다 라고 천명을 한 것으로서,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대 업적에서 고령(산동) 신씨 가문에서는 반듯이 알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대 한 민 국이라는 국호를 제정 하게 한 우창 신석우 선생.

 

한국인의 혼을 깨어나게 한 한국 혼의 저자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아버지 !

2.8 3.1 독립(운동)혁명의 지휘자 !

대한민국 독립(운동)혁명의 설계자 !

라고 역사계에서 주장을 하고 있는 예관 신규식 선생.

 

민족의 얼()‘을 일어 깨우치게 한 민족의 대 스승 단재 신채호 선생.

 

북간도.서간도에서 독립혁명(운동)기지의 건설 등 일생을 국가독립에 바친 경부 신 백우 선생.

등을 위시하여 삼강 신 건식선생. 소창 신 성모선생. 등 이들의 위업을 따른 33인 대표 동오 신 홍식 선생. 고향 미원에서 3.1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나서 옥고를 치르고 중국으로 망명 후 서거한 송암 신 경구 선생 등 우리 고령(산동) 신씨 가문에서 배출한 애국지사는 50여명이 넘으며 건국 훈.포장을 추서 받은 애국지사만 17분에 달하고 있다.

 

특히, 예관 신 규식선생 직계가족은 4대가 독립(운동)혁명에 투신하였으며 건국 훈.포장을 16명이나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영향을 받아서 1896년 고종의 광무개혁으로 인하여 대한제국의 관할구역을 13도로 했으며 기미년 3.1(운동)혁명에서 당시 13도 중에서 충청북도에 6명 중에서 청주군(현재 청주시) 출신으로는 의암 손병희 선생 등 5분이나 있으니 이로써 청주가 애국 충절의 본향이라고 불리고 있다,

 

여기에서 기미독립선언 33인 대표 손병희선생이 예관 신 규식 선생에게 지도를 받아서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33인 중에서 위창 오 세창 선생은예관이 없었다면 기미 3.1(운동)혁명이 불가능 했다 라고 자서전에 기록하고 있다.

 

한국교육방송 EBS 에서는 2005년 특집 다큐멘타리로서 도올 김 용옥 교수와 협력하여 기록하고 방영을 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10부작 제10황포의 눈물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아버지 예관 신 규식 선생 이라고 단언을 했다.

 

이승만 마저도 예관 성생은 한 겨울 북풍 부는 벌판에 홀로 서있는 소나무 같은 분 이라고 회고를 했다.

 

역사가들은 말한다, 대한민국 독립(운동)혁명의 지휘자. 설계자. 아버지. 예관 신 규식 선생 !

 

위와 같은 건국 대한민국이라는 위업을 이루게 한 고령(산동) 신 씨 가문이 배출한 선열들의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후손들 중에는 어이 업게도 아나키스트가 공산주의 빨갱이 라고 하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짓으로서 잘못된 편견의식은 문중의 소수자들에 의한 역사의식 부재에 기인한 다고 하자,

 

대한민국 이라는 위대한 위업을 이룬 선대들의 거룩한 뜻을 이어받을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현재 국토 분단의 현실과 이데올로기로 탓으로만 일관하면서 그릇된 정치 세력과 친일 반역 후예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빌붙어서 자신만의 얄팍한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등 후대들의 무능으로 인하여 선대의 위업이 아직도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고 있으며, 그 직계 후손들 대부분은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등 제대로 된 예우와 추앙을 받고 있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만일 선대에서 군자금으로 사용한 금액이 현재의 화폐로 환산 한 엄청난 금액을 알게 된다면 너도나도 그 돈만을 위하여 찾아 나서게 될 것은 자명한 일임으로 적당한 기회에 그 근거와 함께 천문학적인 액수를 대한민국 정부를 통하여 밝히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문충공 보한재 신숙주 선생의 업적 까지도 친일반역의 도구로 이용하기 위하여 녹두나물을 비유하여 숙주나물이라는 국민적 비아냥을 받게 하는 등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고령(산동) 신 씨 후손들은 폐해를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신 숙주 선생의 생. 거를 시작 기점으로 한 1417-1475년 이후로부터 다음과 같은 각종 문헌을 찾아서 숙주나물에 대한 연원을 찾아보았다,

 

1840년대 조선시대 서 유구(1764-1845)선생이 집필을 주도한 林園16가 있으며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라고도 한다, 이는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 최대의 농림의학 생활백과사전이다. 임원16(林園16)16225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음식을 다룬 정조지(鼎俎志)는 식품의 종류 및 저장과 가공법에 대한 기술을 한 책이다.

1670음식디비방

1808년 만기요람(녹두장음菉豆長音) 조선시대 요리책

1911 1913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1917년 초판발행.

숙주나물이라는 명칭은 위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시대 및 일제 강점기인 기미년 3.1(운동)혁명 과 19194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직후 까지도 업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1922925일 예관 신 규식 선생 서거 이후부터 숙주나물 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친일 반역자들에 의하여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1923년 월탄 박종하의 소설 목 메이는 여자

1924년 위관 이용기의 조선쌍무신식요리제법은 박신영의 조선요리제법의 복각분 이다

민속학자 손 진태 선생이 악부 원본 첫머리에 남긴 소개 글에

이용기는 풍류를 좋아하여 오입쟁이로 일생을 살았다라고 했다.

1928년 춘원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제한 단종애사

1934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 신영조선요리제법복각분 발방신영의 조카이다

 

월탄 박종하는 대표적 친일 반역자로서 1923년의 소설 목 메이는 여자에 녹두나물을 숙주나물 이라고 표현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월탄 박종화(1901-1981)는 해방 후 한국문학가협회 초대회장, 서울신문사 사장, 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고, 1966년엔 제15.16민족상을 수상한 상금으로 '월탄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한 문학계의 거두다.

대부분의 친일부역자들이 그러했듯 월탄 박종화의 친일행위는 해방 후 그가 갖고 있던 영향력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월탄은 일제의 패망 직전인 1944121일 발표한 '입영의 아침'이란 글에서 학도병들의 입영을 고무 찬양했다. 그 일부를 적어 본다.

"동생아. 적국을 두들겨 부숴라! 미영(미국과 영국을 말함)을 두들겨 부숴라.……옛날 고구려때 이러했으리라. 신라때 이러했으리라!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장군의 화랑님들이 이러했으리라.……당나라 천자 이세민의 눈알을 백우전 화살로 쏘아버린 안시성 양만춘도 오늘날 우리 이 학병의 기개와 방불했으리라. 적을 쏘라. 불의를 응징하라. 모든 불공대천의 원수를 두들겨 부숴라! 그대들은 이미 정정당당한 무적황군의 한 사람이다."

이처럼 '정정당당한 무적황군'을 찬양했던 박종화 와 춘원 이광수는 192219 현진건, 이상화 등과 함께 잡지 (백조 (白潮))지의 필진으로 활동을 하는 등 친일 반역자로서 자신들의 영달을 위하여 민족에게 철저한 반역을 했으며, 일제를 위하여 선. 악 마저도 뒤 바꾸는 민족 반역의 짖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춘원 이 광수는 예관 신 규식 선생의 지휘를 받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신한청년당에 1918년에 가입 및 1919년 동경에서 2.8독립 선언서를 작성 하는 등 3.1(운동)혁명 후 1919 4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임시정부 공보국장으로서 임시정부의 기관지였던 독립신문 사장 겸 임시정부의 선전활동을 담당했었다. 또한 독립신문 주필과 신한청년당 기관지 신한청년 주필로 겸임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처럼 항일에 앞장선 독립투사였으나 이를 접고 19213월 귀국하여 허영숙과 재혼하였다. 종로학원에서 철학, 윤리, 심리, 종교 등을 강의했고 경성학교와 경신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22년 동아일보에 입사 후부터 친일 반역자로 변절을 한 다음부터 친일과 반역의 죄를 저지르는 등 악귀의 길을 가다가 동아일보에 단종애사라는 연제 소설을 썼던 것이다, 1929 단종애사는 대중의 인기를 크게 얻었다. 이광수는 장편 '단종애사'에서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집권한 역사를 다뤘다. 그는 사육신(死六臣)이 처형당한 날 신숙주의 아내 윤 씨가 목숨을 끊었다고 썼다. 변절한 남편이 부끄럽다며 다락방에 올라가 목을 맸다고 묘사했다.

 

이광수는 18세기 실학자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실린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삼았던 것이다.

 

단종애사를 통해 사람들은 단종조선총독부의 식민통치를 받는 백성으로, 사육신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조선총독부에 협력한 중추원 고관들을 한명회, 신숙주, 조선총독부일본 천황을 찬탈자 수양대군으로 해석하였다. 작품은 크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많은 남녀노소가 애독하였다.

 

그리고 애국의식 없이 친일사관에 그냥 젖어있던 요리관련 책 저술자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숙주나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로서 억압받던 식민 대중들에게 녹두나물은 변절의 대명사로 각인되었고 숙주나물은 신 숙주 선생을 욕보이게 하면서 그 후손들로서 대한민국 독립(운동)혁명의 선구자들로서 중심에 있던 고령(산동) 신 씨 가문을 일제의 집중 탄압의 대상으로 되게 했던 것이며, 반역자들은 친일을 위한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럴만도 하다는 것이다, 당시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전부터 예관 신 규식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저명인의 추천서와 함께 철저한 신원조사를 거쳐야만 만날 수 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중국 혁명의 거두 손문 선생과 함께 신해혁명을 하는 등 중국 혁명의 위대한 거인들(진기미. 당계요. 송교인. 진득수. 이등휘. 대계도. 호한민. 조자화. 백문위 등 중국 국민당 핵심 인사들)과 같이 동고동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해에는 우창 신 석우 선생. 단재 신 채호 선생. 소창 신 성모 선생. 경부 신 백우 선생. 삼강 신 건식 선생 등 고령(산동) 신 씨 친족들인 독립(운동)혁명의 거목들이 있었다.

 

이에 더하여 도산 안 창호. 백범 김 구. 이 승만. 조 소앙. 김 규식(북로군.서로군.미국 등 3이의 동명의 항일 애국지사임). 백야 김좌진. 지 청천. 경천 김경서(북로군. 백마탄 장군으로 불렸으며 아명이 일성으로 북한의 김일성이 도용한 실존의 인물). 홍 범도 등 일제 탄압의 특별대상자들이 예관 신 규식 선생의 지도를 받는 등 추앙하고 따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예관의 제자들로서 해위 윤 보선 전 대통령. 철기 이 범석 장군. 몽양 여 운형 선생 등등 기라성 같은 애국지사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독립혁명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해서 독립혁명의 선봉에서 독립혁명의 지휘를 하게 한 예관 신 규식 선생이다.

 

전해오는 말에는 고령(산동)신 씨 가문은 조선시대에는 명문대가의 귀족이었으나 독립(운동)혁명으로 인하여 멸문지하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화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이런 거인들을 일제가 처단하기 위한 온갖 방법을 동원했던 역사의 사료가 증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은 3.1독립(운동)혁명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쓰는 명칭을 '조선만세소요사건(朝鮮萬歲騷擾事件)'이라고 한다. 소요란 "여럿이 떼지어 폭행·협박 따위를 함으로써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을 뜻한다.

 

작금의 현실을 보노라면 역사의 죄인으로서, 그 피해자가 됐다 !” 라고 해도 죄의식을 잊어서는 안 될 일제 당사자들이 반성은커녕, 반복되는 남.북 갈등의 조장. 독도 등 영토침탈 야욕. 작금에는 경제보복 등 뻔뻔스러운 행태의 원인을 우리는 되 집어 보아야만 할 것이다.

 

일제의 국가 찬탈로 시작된 남.북 분단의 현실 그리고 6.25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의 원인을 항상 기억해야만 한다.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역사학자 이 이화 선생은 자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필설을 하였다.

 

역사의 흐름에 떠밀린 인생

 

신숙주 그는 여느 벼슬아치와는 달리 검소한 생활을 했고, 결코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으면 부가 따르는 법이요,

더욱 부당하게 권력을 잡으려는 동기는 재산을 탐한 데에서 나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는 부를 탐하지 않았고 공평하게 사람을 썼다는 칭송을 들었다.

그는 죽을 때 자손들에게 장례를 검소하게 하라고 당부했고 자신의 무덤에 책만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렇게 인간적인 사람이었고 벼슬아치로서 결함을 지닌 인물이 아니었다.

나약할지언정 포악하지 않았으며,

현실적이었을망정 술수를 부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결함으로 지적되는 것은 물론 절개를 지키지 못한 것이었고,

이것 또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서 곰곰이 따져 볼 여지도 없이 윤색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잘 쉬는 나물을 숙주나물이라 했다. 여기의 숙주는 신숙주의 이름을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한 인간의 평가는 전체를 보아야지 한 국면만 보아서는 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절의란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진다.

민족과 국가 그리고 한 사회를 위한 것일 때 애국자도 되고 위인도 된다.

그러나 한 개인을 위한 것일 때에는 그 이해의 각도가 달라질 필요도 있겠다.

신숙주는 목숨을 부지하여 편안하게 산 대신에 명예를 잃었다.

성삼문은 한 목숨을 바친 대신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여기서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은 성삼문은 그 이상 이룬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사육신의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가치관의 혼란만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겠다.

 

신숙주는 분명히 우리 역사에 큰 문화적 업적을 남겼다.

신숙주는 역사의 흐름에 떠밀려 갔을 뿐,

그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는 않았다.

또 그는 비난받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깨끗한 벼슬아치였다.

그의 행적은 보통 사람이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정도의 것이었지만,

그가 뛰어난 학자요,

세종 · 문종의 총애를 받았던 신하였기에 따르는 유명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생육신처럼 초야에 묻혀 지냈더라면 역사에 업적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많이 죽인 세조 밑에서 신하 노릇을 했다는 것만으로 신숙주를 비난하기만 한다면 온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살아남았기에 우리의 대한민국 역사 속에 두 거인이 그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이들은 바로 독립투사이며 임시정부의 아버지 예관() 신규식(申圭植)과 역사가이며 민족의 스승인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이다.

 

신규식은 민주주의 와 법치의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초석이 된 다음 장열히 서거를 하였고, 신채호는 근대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온 힘을 쏟다가 일제 경찰에 잡혀 옥사했다.

혹시 이들은 할아버지의 절의를 대신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라고 이 이화 선생은 끝말을 맺고 있다.

 

대한민국이 영속하는 한 고령(산동) 신 씨 선구자들이 이룬 업적은 영원히 빛 날 것이며 비록 이로 인하여 문중이 멸문지하에 이르렀던 그 후손들 이지만 선대의 위대한 위업을 이어 받아서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만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권리위에 잠자는 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 법은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고령(산동) 신 씨 문중에서는 선대의 위업을 본 받아서 현재 대한민국 정치에서 여()나 야() 한쪽만이 아니라 모두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기를 바라며 선대의 위대한 위업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정치를 말한 것은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그 방법으로서 정치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며 예관 신 규식 선생이 1922925일 서거의 마지막 순간 까지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반듯이 지켜야 한다는 단 한가지의 유언을 한 사실이다, 그 유지를 받들어서 아우 삼강 신 건식 선생과 사위 석린 민 필호 선생을 위시하여 그의 제자들과 함께 광복되는 1945년 그 날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켜낸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수립이 된 것이다.

 

사료가 알려주고 있는

실로 장엄한 역사적 사실로서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이렇게 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검찰일보 취재본부장 신 환우기자

E-mail : shinfka@hanmail.net

20190714

   
  0
3500
    N     분류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78 신장호 종친님 글을 옮깁니다 - 종친회는 즉시 조치바랍니다 [1] 신비로 2021-08-04 299
677 문신 조상님을 위한 책에 [충혼]이란 제목이 적절한가 서정 2021-04-21 275
676 대종회장의 궐위(闕位)상태 어떻게 할 것인가. 서정 2021-03-27 282
675 의견    Re..과연 우리 고령신씨 문중이 이렇게 한심하게 썩었단 말인가?.. shin310 2021-04-01 370
674 요청 졸재공 영정사진 등록요청 수재 2021-03-03 206
673 [訃告] 저희 아버지의 별세를 알립니다 빛나라 2021-02-16 260
672 요청 대종회 지도자 종친님들 모두 어디 계십니까? [1] 서정 2020-11-15 413
671 문의 드립니다. 엽승신 2020-09-10 11
670 질문 족보 등재 관련 개미두목 2020-09-03 4
669 고령신씨 시조묘소 참배 의견 세진 2020-07-15 12
668 제19대 대종회장 퇴임 및 제20대 대종회장 취임 업무 관리자 2020-03-02 355
667 명분론에 거덜난 나라. 흰쾨끼리 2020-02-06 270
666 머리를 깎자고 했을 때, 흰쾨끼리 2020-01-11 244
665 주자 가례는 조선후기에 보급. 흰쾨끼리 2020-01-03 263
664 모든 제도는 변한다. 흰쾨끼리 2019-12-16 235
663 기독교식 제례를 만들어 주세요 [1] 흰쾨끼리 2019-12-11 330
662 의견 20대 대종회장님은 이런 분으로 모십시다. 서정 2019-11-28 334
661 질문 족보 내용 등록 개미두목 2019-10-07 4
660 질문    Re..족보 내용 등록 관리자 2019-10-14 5
659 숙주나물 명칭사용금지신청 해야합니다 바라기 2019-08-22 386
658 질문 미국 교포의 족보등재 Justin 2019-07-30 283
657 답변    Re.. 부용당2세 2019-07-31 265
656 숙주나물에 대하여 ! 대한민국31 2019-07-14 549
655 춘원 이광수 전집 출판한다는 소식을 듣고. 흰쾨끼리 2019-07-12 262
654 특별 우리 문중과 3.1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관련 대한민국3.1 2019-05-19 261
653 특별 대한민국 과 고령 신(申) 씨 가문 대한민국3.1 2019-05-12 1322
652 특별 대한민국의 국부(아버지) 예관 신규식 선생님 [1] 대한민국3.1 2019-04-07 362
651 고령신씨 지담공파 종중의 연락처를 알려주세요 백목 2019-01-09 334
650 서울시 종회 후손교육 실시 관리자 2018-06-07 379
649 만대산정기품고 만대연물길 흘러. 청풍명월 2018-04-09 475
12345678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