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
ㆍ작성자 대한민국3.1
ㆍ작성일 2019-05-12 (일)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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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과 고령 신(申) 씨 가문

국호 대 한 민 국을 탄생 시킨 우창 신석우 선생 !

건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아버지예관 신 규식 선생 !

민족의 ()을 일깨워준 대한의 지주 단재 신채호 선생 !

이들을 배출한 산동(고령) 신 씨 가문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레주 !

 

당시 산동3재로서 천재로 불리던 산동(고령) 신 씨 가문이 배출한 건국 대한민국을 위한 임시정부를 탄생시킨 주역들로서 항일 독립혁명의 거목들이다. (친족 간에 예의를 갖추어서 찍은 사진이며, 가운데 우창 신석우 선생은 왼쪽 단재 신채호 선생의 대부님이며 사진 우측 예관 신규식 선생은 우창 선생의 조카이다)                        한국검찰일보 취재 본부장 신 환우


1900년대 초기 건국 대한민국의 토대가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하는 항일 혁명역사의 사진들 속에는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카이저 콧수염을 기른 멋쟁이 신사가 사진 속의 옆쪽 또는 뒤쪽에서만 항상 등장해 있다.

그가 바로 불후의 명작 한국혼의 저자 예관 신 규식 선생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부터 시작한 우리의 역사가 이미 100년이 흘렀다

개인적인 한 치의 사욕이나, 정치적인 욕망이나 명예도 독립혁명(운동) 동지들에게 모두 다 넘겨주고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위하여 지고지순한 희생의 삶을 살다 간 예관 신 규식 선생.

 

그를 아는 몇몇 학자들과 소수의 사람들 그리고 당시에 양식 있는 독립혁명(운동)가 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설계자라고 한다 그리고 2.8독립운동과 3.1혁명의 지휘자라고 한다.

이제 부터라도 우리는 그를 대한민국의 아 버 지 ! 라고 불러야 한다.

현재와 미래의 대한민국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말한다. 난세에 영웅과 호걸이 등장했다고,

물론 영웅과 호걸들도 혼자서는 대업을 이룰 수가 없다,

그의 인품과 철학을 추종하는 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 에게는 고령 신씨 가문에서도 친족들로 이루어진 산동 신씨들이 있었다. 청주시 상당산성 넘어 동쪽에는 세종대왕 시대에 한글 창제의 주역인 보한재 문충공 신숙주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집성촌 낭성. 가덕. 미원면이 있으며 이곳의 친족들 중에는 당시에 청주의 산동3재라고 하는 단재 신채호 선생, 예관 신규식 선생, 경부 신백우 선생 등 3명의 천재들이 있었다,

그들 옆에는 삼촌. 동생. 조카 등 친족들로서 우창 신석우, 삼강 신건식, 동오 신홍식 선생, 신순호. 신명호 등 대한민국 독립혁명사에서의 거목들이 있었다.

 

국내에는 이들의 뒤를 받쳐주는 친족 대부로서 송암 신경구 선생은 3.1혁명 당시에 위의 외국에서 활약하는 선구자들과 연락을 하는 등 가덕. 낭성. 미원. 청천면. 보은군 지역(당시 미원면 생활권역) 등의 대표로 지역의 3.1혁명(3.1혁명 후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 및 고문으로 한쪽 눈 실명 등 복역 후 중국으로 망명 및 순국)을 이끌었으며 이를 위시로 신성휴 신국휴 신형식 선생 등 18명의 건국 훈·포장을 추서 받은 애국지사와 기록이 미 발굴된 100여 분의 친족이 있었다.

 

또 이들의 뒤에는 산동(고령) 신 씨 친족들이 영천학계를 만들어서 1901년 문동학원(현재 청주시 가덕면 소재 가덕중학교). 1903년 덕남사숙. 1904년 산동학당(현재 청주시 낭성면 소재 산동초등학교 폐고). 1909년 청동 학교(청주시 소재 폐교) 등의 사학교육기관을 만들어서 친족위주의 후학들에게 신문물에 대한 신식 교육을 하였으며 경술국치(1910829) 이후부터 이들의 대부분은 독립혁명 애국지사가 되었으며 영천학계는 이들의 항일 독립 혁명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후원을 하게 되었다.

 

영천학계의 대표는 우창 신 석우 선생의 부친 신 태휴 선생, 초대 총무 겸 선생으로서 예관 신규식 선생이었으며, 단재 신채호 선생, 경부 신백우 선생 등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했다.

 

당시 국내 청주 지역의 항일 애국지사 100명 중에 산동(고령) 신 씨가 17(17%)을 차지할 정도로 대한민국 독립혁명의 명문가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가문의 인재들이 조국을 광복을 위한 희생으로 기울어진 가세와 가문은 멸문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로서 가문 전체가 조국의 광복을 위한 희생을 했지만, 조국의 광복 후부터 이들 가문에게는 이데올로기 라는 정치적 탄압으로 말미암은 혹독한 시련의 세월만이 이어져 왔다.

 

중국 상해로 망명을 했던 예관 신 규식 선생의 가족만 하더라도 4대에 걸쳐서 16명의 독립혁명(운동)을 했다고 하는 사실은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러하듯이 산동(고령) 신 씨들은 항일 독립혁명(운동)의 대가로서 친일 3대 부자 항일 3대 거지라는 말도 안 되는 차가운 현실만이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단재 신 채호 선생의 저서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도 금서로 지정돼서 팔지도 사서 읽어도 안 되는 금서였다는 사실이며, 정부에서는 신채호 선생님의 국적을 2009년에서야 회복해 주었지만 부. 모 도 없이 처 도 없이 혼자만이 호적부에 등재를 해 준 어처구니없는 상태로서 단재 신채호 선생은 부모도 없이 어디서 나왔다는 것이며, 그의 아들 신 수범씨는 어머니도 모르는 사생아라는 것이다. 사실로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 자혜여사 또한 독립운동가 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해방된 조국에서 애국의 대가 치고는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하는 슬픈 현실이다.

이렇듯 조국의 독립과 대한민국 건국을 위하여 자신의 처.자식도 저버리고 목숨 까지도 기꺼이 바친 애국선열들에 대한 우리의 자화상은 너무나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단재 신채호 선생의 수많은 명저서 중에서 조선상고사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1950년대부터 교재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항일투쟁의 선봉에 서서 독립혁명을 이끌어서 건국 대한민국을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등 광복 후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탄생이 있게 한 예관 신 규식 선생과 단재 신 채호 선생 등 독립 혁명사의 거목들에게는 무한의 신뢰와 아낌없는 성원을 해주었던 혈연들이 있었으며, 당시 씨족사회로 이루어진 문중의 친족이라는 기본 바탕이 있었음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이들 고령 신 씨들은 영조 대왕 즉위 4년 후 1728315일 무신의 난에 선대의 신영천이 연루되어 과거에 출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약 140여 년 후 1865년경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으로 복권이 되어서 과거에 출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당시의 씨족 사회였던 고령 신 씨들은 조선조 선대와 같은 문중의 번영을 되찾고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여러 개의 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1905년 을사늑약 이전에 설립한 신문물 교육의 사립학교는 고령 신 씨 가문이 유일하다.


이로서 청주시가 우리나라 신식 사학교육의 발상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1924년에 대성보통학교를 시작으로 한강 이남에서 생겨난 최초의 사학 청주대학교가 있는 청석 학원이 설립되었고 또 다른 명문 사학으로서 서원 학원 등이 있으며 청주시가 교육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영천학계 총무이며 선생이었던 예관 신 규식선생 과 단재 신 채호선생 경부 신 백우선생 등이 1910829일 경술국치 이후 독립혁명(운동)에 투신을 하게 되자 그들의 친족이자 제자들이었던 산동(고령) 신 씨 의 후손들은 가르침을 주던 선생들을 따라서 당연하게 독립혁명(운동)가의 길을 따라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건국을 위한 대한민국 독립 혁명사에서 이들 고령 신 씨 친족들로 이루어진 항일 독립혁명의 거목들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탄생은 요원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의 손문과 함께 신해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를 한 혁명의 경험이 있었던 예관 신 규식 선생이 만든 거대한 비밀조직으로서 막대한 자금력이 소요됐던 1912년 동제사(동주공제)가 항일혁명을 주도 및 여러 항일 단체들에 지도를 하는 등의 (당시에 동제사의 조직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중앙아시아, 연해주. 국내 등 세계적인 비밀조직 이었으며 동제사 요원들만 시용하는 암호를 사용할 정도로 치밀하고 조직적인 비밀결사 조직 이었으며, 1915년 신한혁명당 결성 및 대동보국단 설립 그리고 1910829일 경술국치 이후 독립혁명(운동)사에서 최초의 문서(선언)로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근간이 되었던 대동단결선언 (19177)을 시작으로 대한(무오)독립선언 및 2.8독립선언. 3.1혁명(운동)의 주역 신한청년당 과 상해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헌법을 실현한)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주인공 등 항일혁명 전반에 걸쳐서 중추적인 열할 을 했다)활약을 했으며, 곧바로 1913년 박달 학원을 설립하여 기본 6개월부터 16개월의 과정으로 기본교육 후 유학 및 중국무관학교 입학을 시키는 등 체계적인 독립혁명을 하게 되는 수많은 인재를 배출해 냈다(해위 윤보선 전 대통령. 철기 이범석 장군 초대 국무총리. 박영준 장군. 유정 조동호 선생. 석린 민필호 선생. 담원 정인보 선생. 소해 장건상 선생. 유자명 선생. 여운형 선생 등등) 동시에 예관 신 규식 선생의 조카 단재 신채호선생 백암 박은식선생 등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민족의 얼을 일깨워 주는 등 장차 독립혁명을 이끌게 될 박달 학원의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켜서 해외 유학을 보내는 등 독립혁명을 위하여 체계적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등 독립혁명(운동)의 모든 설계를 했으며, 이후 이들은 선하와 같은 독립혁명(운동)사의 선봉에서 활약하게 된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서 3.1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6명이 충북인(손병희 선생. 권동진 선생. 정춘수(후에 변절)이며, 미원지역 출신의 민족대표가(신홍식선생. 신석구선생. 권병덕 선생) 3분이나 된다.

 

이렇게 항일 독립 혁명의 선봉에서 세계적인 거대 항일혁명 비밀 조직과 독립투사들을 배출해 내는 박달학원까지 운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시대가 씨족 사회로서 청주지역의 호족세력이었던 산동(고령) 신 씨 문중이라는 막강한 후원자로서 이들의 친족들로 구성된 영천학계가 있었으므로 가능했던 것이다, 이들의 영천학계는 조국의 해방과 건국 대한민국을 위한 항일 독립혁명의 후방에서 무한한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 고령(산동) 신 씨의 후손들로서 조국과 민족의 독립혁명 선봉에 서 있던 애국지사들로서 순국의 순간까지도 고결함을 잃지 않은 예관 신 규식 선생과 단재 신 채호 선생의 독립을 위한 혁명정신의 저력은 서거 후에도 이들의 뜻을 받들어간 동제사 요원들의 희생과 이들이 가르친 박달학원의 후예들로 인하여 항일 독립혁명(운동)사에서 끊임없이 이어져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드디어 광복된 조국 대 한 민 국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의 민주주의 와 법치주의도 요원한 것이었으리라 가히 짐작케 한다.

 

따라서 충청북도 청주시가 교육의 도시. 애국 충절의 본향 이라고만 막연히 알고 있던 우리들은 청주의 산동(고령)신 씨들에 의한 민주주의 와 법치주의 의 발상지요 근간으로서 청주시 가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정통성 확립에 관한 중대한 문제로서 정부는 국가차원에서 이들을 위시하여 청주시의 성역화를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산동(고령) 신 씨 가문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레주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라사랑이란 무었인가 ? 생각을 해야만 하게 한다.

 

다음 호부터는 건국을 위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아버지 예관 신 규식 선생님. 국호 대한민국을 탄생시킨 우창 신석우 선생님. 대한민국의 정신적 지주 이며 민족의 스승 단재 신채호 선생님 등에 대하여 연재합니다.

 

참고문헌: 국사편찬위원회의 한민족독립운동사. 경기도박물관. 독립기념관. 충청북도교육청. 고령신씨 대족보. 위키백과. 유자명 선생 자료집(독립운동편). 충청북도의회 (충청북도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사적지 검토). 한민족대백과. 남파 박찬 익 전기. 조동걸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1917년의 대동단결선언). 조소앙 자전.1943. 정원택의 (지산외유일지). 예관 신규식의 저서 (한국혼).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

20050819(EBS 방송 제10부 황포의 눈물), 언론인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오세창 ‘31운동은 예관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단언. 철기 이범석 자전. (3·1 독립운동(獨立運動)과 임시정부(臨時政府)의 법통성(法統性)). (이현희 동방도서,1987). (인물한국사(人物韓國史)). (이현희 청아출판사,1986). (대한민국임시정부사(大韓民國臨時政府史)) ( 이현희 집문당,1982)

(한국혼(韓國魂)) ( 신규식 박영사 1975). (동제사(同濟社)의 결성(結成)과 활동(活動)) ( 김희곤 (한국사연구(韓國史硏究)) 48,1985)

20192016

 

한국검찰일보 본부장 신환우 기자

이메일, shinf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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