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
ㆍ작성자 서정
ㆍ작성일 2017-02-06 (월)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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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신용개의 생의 철학에서 보았듯이 모친상을 당하여 가례(家禮)대로 삼년상을 실천한 것이라든지,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의 편찬에 가담하여 성리학적 실천윤리를 광포한 것이라든지, 더 나아가서는 신진사류들과 소능복위론(昭陵復位論)과 세조조(世祖朝) 일과 관련한 전대왕실의 정통성에 대한 일정한 평가의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한 것은, 소학(小學)이나 가례(家禮)에 근거한 유학적 윤리의 실천문제가 왕실에서 먼저 해결되어야 할 과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또한 金銓. 南袞 등과 더불어 [속 동문선(續東文選)]을 편찬하면서 金宗直의 글에 많은 비중을 두고 중국에 보낸 형식적인 글인 표문(表文)은 모두 제외시켰는데, 이것은 훈구파(勳舊派)가 사장(詞章)에 열중하여위인지학(爲人之學)’에 힘쓰는 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철학들은 당시 金宗直을 종주로 하는 신진사류들과의 교류를 통해 받은實踐爲主 性理學기풍이 그의 삶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신용개는 정통적인 훈구벌열의 집안에서 할아버지인 문충공의 훈도를 받으며 자랐고 조정에 출사한 뒤로는 金宗直을 종주로 하는 신진사류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학문인實踐爲主 性理學에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조선전기 士林派의 학문은 그의 삶의 기초가 되었으며, 자신의 학문에 충실하여 부끄럽지 않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삶은 중종반정(中宗反政) 이후 勳舊派로 대표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으나, 당시 훈구파와는 구별되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요정의 삶이 드러나는 다음의 글은 자신의 초상화에 찬()한 글이 있다.

 

  이형천소부 이모도자구 빈설이심성 관영이신고 유분화의리우중

爾形天所賦. 爾貌道斯俱. 雪而心惺. 官榮而身枯. 有紛華義理戰于中.

 

재예거이직청구자야 저작호도미 노이부득기우자야 형가사우제영

滓穢去而直淸臞者耶. 咀嚼乎道味. 老而不得其臞者耶. 形可使寓諸影.


 

심난사기범모 관거이자공 인장어이위지우

心難寫其範模. 冠裾而坐拱. 人將於爾爲智愚.

<二樂亭集 卷7 自眞贊>


 

형체는 하늘에 품부한 바요, 네 모습은 가 이에 구비된 것이네. 머리 가 하얗게 되었으나 마음은 오히려 새롭게 깨어나고, 벼슬을 영달했지 만 몸은 말라가네. 번화함과 義理가 마음에서 싸우는데,

 

더러운 것을 제거하였으니, 곧 맑고 파리한 사람인가? 道味를 완미하였 으니, 늙어서도 살찔 수없는 사람인가? 모습은 眞影에 나타낼 수 있으나

 

마음은 그 範模을 묘사하기 어렵네. 을 벗고서 두 손을 맞잡고 앉았으 니, 사람들은 너를 보고 지혜롭다 하고 어리석다고도 하리니.

 

  당시 사회가 勳舊派士林派의 대립으로 정치적으로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치자(治者)로서, 마음속의 번화함과 의리가 싸울 때마다 마음에서 더러움을 걸러 내고 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라는 것은 자신의 삶의 기초가 되었던實踐爲主 性理學을 말하며 이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에 당시 혼란했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더욱 고통과 갈등을 받게 되는 이요정의 내면적 갈등과 번뇌를 잘 표현한 것이라 할 것이다.

 

 

2. 문이재도적(文以載道的) 시문 관(詩文觀)

 

  이요정이 생존했던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에는 세 번의 커다란 사화로 정치적으로 대립은 물론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훈구파는[사장(詞章)]을 사림파는[도학(道學)]을 중시하여 그 견해를 달리하였다.

  詞章家들은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사대교린을 위한 현실적 필요성 때문에 詞章을 중시해야 하며, 문장만으로도 나라를 빛낼 수 있고, 사대 또는 국환의 모면을 위해 사장이 크게 이바지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비해 道學家들은 문장을 하기 이전에 인격수양이나 도덕을 추구하는 학문이 앞서야 문장을 하더라도 참된 문장을 짓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詞章家 道學家의 두 문학이론이 대립을 보이는 가운데 신용개는 한 나라의 문형으로서 大提學의 자리를 역임했음에도, 金宗直의 학문적 영향을 받아 詞章에 치우치지 않고 道學家의 문학관을 정확히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道學家의 종주라 할 수 있는 김종직의 시문관은尹先生祥詩集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술(經術)을 하는 선비는 문장을 못하고 문장을 하는 선비는 經術에 어둡다다는 세인(世人)의 말이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그렇지 않다. 문장이라는 것은 經術에서 나오는 것이니, 경술이 곧 문장의 근본이다. 초목(草木)에 비유하자면 뿌리가 없이 어찌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라며 꽃과 열매가 곱고 빼어날 수 있겠는가? 시경(詩經)서경(書經)등 육예(六藝)는 모두 경술(經術)이며, 六藝의 글은 곧 그 문장이다.

 

  위의 글에서 의미하는바 와같이 金宗直, 즉 육경(六經)에 근본으로 하여 도덕을 추구하지 않는 문장을 초목에 비유하자면, 뿌리가 없는 것과 같다고 보고, 그러한 문장은 결국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게 자랄 수도 없고, 꽃과 열매가 곱고 빼어날 수도 없다고 보았다. 그러면 金宗直道學家的 시문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이요정집(二樂亭集)]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월자대아식 중작선조 능온순장율 낙불음 애불상 원규풍아지역자

粵自大雅熄.衆作蟬噪.能溫醇莊律.樂不淫.哀不傷.遠窺風雅之域者.


 

근일이수 입의조어 불항불류 단중근정자 역세불다득 희 문장수세강

僅一二數.立意造語.不亢不流.端重近正者.亦世不多得..文章隨世降.


 

인추사부동 낙춘화이망추실 이피부이유골수자개시 외능외부화심골실

人趨舍又不同.樂春華而忘秋實.理皮膚而遺骨髓者皆是.有能外膚華尋骨實.


 

직소기정파자 즉수미조어오묘 오유장표이창지 항우근어전아자호

直遡其正派者.則雖未造於奧妙.吾猶將表而彰之.況又近於典雅者乎.

<二樂亭集 卷8 顔樂堂集序>

 

대아(大雅)가 없어지고부터 뭇 작품들이 매미가 울듯 시끄럽게 나왔으나 능히 온순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아 멀리 풍아(風雅)의 경지를 엿보는 것은

고작 한 두 작품뿐이다. ()를 세우고 말을 만드는 것이 지나치지 않고 휩쓸리지 않으며 단중(端重)해서 에 가까운 것 또한 세상에서 많이 얻을 수 없다. 슬프도다! 문장이 시대를 따라 저급해지고

사람들이 쫓거나 버리는 것 또한 같지 않다. 춘화(春華)를 즐기면서 추실(秋實)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피부만을 다스리면서 골수를 잃어버리는 자가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능히 피부와 꽃을 도외시하고 골수와 열매를 찾아 곧바로 그 바른 가닥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자라면 비록 오묘한 경지에는 나아가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나는 오히려 드러내고자 하는 것인데, 하물며 전아(典雅)에 가까운 에 있어서랴?


  이 글은 이요정집 권8에 나오는 김흔(金訢)[안낙당집(顔樂堂集)]서문에서 일부를 발췌한 내용으로서 당시 사람들의 문장이 시대를 따라 저급해질 뿐 치우치지 않고 휩쓸리지 않아, 단중(端重)하고 성정(性情)의 바름()에 가까운 작품이 없음을 지적했다.

  이요정은 孔子, 배우는 자들에서 性情의 바름()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자 말한,“시경(詩經)‘관저편(關雎篇)’은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를 해치지 않는다.”라고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 시경을 바탕으로 한 성정지정(性情之正)을 읊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문장을 하는데, 그 근본을 내버려 두고 문장의 화려함만을 일삼는 사람들을 春華를 즐기면서 秋實을 잊어버리고, 피부만을 다스리고 골수를 버리는 자들에 비유하였다. 이는 앞서 金宗直이 그러한 문장을 뿌리가 없는 草木에 비유하여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곱고 빼어날 수 없다고 한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이요정공의 이 글은 결국 시란 육경(六經)의 하나인 시경(詩經)을 근본으로 하여, ()에 해당하는 피부와 꽃을 도외시하고, ()인 열매와 골수를 찾아 性情의 바름()에 거슬러 올라가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문이재도론(文以載道論)과 종경론(宗經論)에 근거한 도학가적 시문관을 피력한 글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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