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
ㆍ작성자 서정
ㆍ작성일 2017-01-26 (목)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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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이계맹(李繼孟)은 이요정공보다 5살 위이다. 그는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영광(靈光)으로 유배되었는데, [二樂亭集]의 시 중 그와 관련된 작품이 7편이나 있고 강혼(姜渾)은 이요정공의 1년 후배로서 이요정과는 1491(성종22)1492(성종23)에 같이 사가독서를 하였다. 무오사화 때 곤장을 맞고 유배되기도 하였으나,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이 되기도 했다. [二樂亭集]에 그와 관계된 시가 4편 있다. 그 중 한편을 보기로 하겠다.

 

 

                                                                                     일단유수만루사

한 자락 깊은 시름 헝클어진 실 같은데, 一段幽愁萬縷絲

                                                                             교심형영자상수

외로운 이내 몸은 그림자만 벗을 삼네. 巧尋形影自相隨

                                                                             추강지허청인골

가을 날 강물에서 뼛속까지 씻어 내고, 秋江只許淸人骨

                                                                              허기한연야득시

피어나는 찬 연기에 시 한 수 떠올리네. 噓起寒煙惹得詩

<二樂亭集 卷6 次士浩韻>

 

  <幽愁>란 단어를 통해 사화로 인한 이요정공의 깊은 근심을 추강(秋江)에 씻어 내며, 가을날 강가의 정취를 읊은 시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희순(李希舜)도 함께 賜暇讀書 하였는데 [二樂亭集]에 그와 관련된 작품도 2개 있다. 그중 한편을 보기로 하겠다.

 

                                                                                   만당운물상신추

상쾌한 초가을 의 저녁 경치 좋으니, 晩堂雲物爽新秋

                                                                     수의창강승처유

滄江의 절경에서 마음껏 노니노라. 隨意滄江勝處遊

                                                                       일야풍청천사수

하루 밤바람 맑고 하늘은 물 같은데, 一夜風淸天似水

                                                                               만정한월권렴구

물가 가득 찬 달빛에 발을 말아 거노라. 滿汀寒月捲簾鉤

<二樂亭集 卷6 次士聖韻>

 

  이 시는 사가독서(賜暇讀書)의 명을 받아 독서당(讀書堂)에서 지내면서 주변의 가을의 경치를 즐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사가독서를 함께한 문신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박은(朴誾1479-1504)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율곡 이이(李珥)의 딸이고 이요정 신용개(申用漑)가 장인이다. 아들은 인량(寅亮). 원량(元亮). 공량(公亮)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통하여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이를 기특하게 여겨 사위로 삼았다. 1495(연산군1) 17세로 진사(進士)가 되었고, 이듬해에는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으며, 사가독서자(賜暇讀書者) 선발에 뽑혔다. 그 뒤 곧 승문원권지(承文院權知)를 받고 홍문관(弘文館)에 선택되어 정자(正字)가 되고, 수찬(修撰)에 있으면서 경연관(經筵官)을 지냈다. 1498(연산군4) 유자광(柳子光)의 간사함과 성준(成俊)이 유자광에게 아첨함을 탄()하는 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그들의 모함을 받아 파직 당했다.

  1504(연산군10) 다시 지제교(知製敎)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갈 뜻이 없었고 이해 갑자사화(甲子士禍)때 동래(東萊)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어 사형을 당하니 그의 나이 26세였다.

  조선 5백년 역사상 한시문단(漢詩文壇)에 이행(李荇)과 더불어 제1인자로 일컬어지는 그는 [해동강서파(海東江西派)]의 대표적 시인이다.‘현실세계의 온갖 고뇌로부터 벗어나 정신적으로 평화로울 수 있는 현실 극복에의 노력과 주변 인물의 죽음을 통한 인생무상을 노래한 내용들을 절친한 친구 이행(李荇)이 모아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를 냈고 [천마잠두록(天磨蠶頭錄)], [천마록], [잠두전후록(蠶頭前後錄)]이 있다.

 

이행(李荇1478-153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택지(擇之)이고 호는 용재(容齋)이다. 아버지는 홍주부사 의무(宜茂)이며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다.

  1495(연산군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권지승문원부정자로 관직 생활을 시작해 예문관. 성균관전적을 역임하고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0년 하성절질정관(賀聖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홍문관수찬을 거쳐 홍문관교리까지 올랐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사간원헌납을 거쳐 홍문관응교로 있으면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되고, 이어 함안으로 옮겨졌다가 이 해 9월에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다시 홍문관교리로 등용되고 이어 부응교로 승진되어 신용개와 함께 사가독서 하였다.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 사류로부터 배척을 받아 첨지중추부사로 좌천되자 사직하고 충청도 면천에 내려갔다. 이듬해 병조참의. 호조참의로 임명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으며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 홍문관부제학이 되고, 이듬해 공조참판에 임명됨과 동시에 대사헌과 예문관대제학을 겸하였다. 그리고 동지의금부사와 세자좌부빈객(世子左副賓客)도 겸임하였다.

  1521(중종16) 공조판서가 된 이후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으로 승진하고, 1524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다시 좌찬성을 거쳐 1527년 우의정에 올라 홍문관대제학 등을 겸임하였다. 1530[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신증(新增)의 책임자가 되어 이를 끝내고 좌의정이 되었다.

  김안로(金安老)의 전횡을 논박하다가 오히려 그 일파의 반격으로 판중추부사로 좌천되어 평안도 함종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졸하였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고 저서로는[용재집(容齋集)]이 있으며 박은(朴誾)과 함께 한시문단(漢詩文壇)에 쌍벽을 이룬 대표적 시인이기도하다. 신용개의 외손녀이며 박은의 딸이 이행의 아들과 결혼함으로써 서로 집안이 되고 이요정의 [비명(碑銘)]을 썼다.

 

김전(金詮1458-1523) 조선 전기, 중기의 문신이다. 호는 나헌(懶軒). 능인(能人)이고 시호는 충정(忠貞)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소년기 때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이름을 알리고, 글재주를 익혔으며 [성종실록][속동문선]의 공저자의 한사람으로 전답하나 없이 오직 거문고와 술로서 스스로를 즐길 정도로 청렴결백하고 문장도 잘했다.

  1489(성종21) 식년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예안현감으로 올라 선정을 베풀어 많은 칭송을 받아 백성들이 그의 생사당(生祠堂)을 세우주기도 하였고, 홍문관수찬을 거쳐 1496(연산군2) 신용개(申用漑). 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그러나 1498(연산군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고, 김일손. 신용개 등과 친분관계인 이유로 파직을 당했다가 왕명으로 특별히 복직하여 부호군으로 다시 서용되었다가 1504(연산군10) 성균관대사성에 올랐으나 갑자사화로 다시 좌천되었다가 중종반정이후 의정부우참찬. 이조. 형조. 예조. 공조판서등을 거쳐 한성부판윤으로 나갔다가 의정부우찬성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그는 남곤등과 함께 조광조(趙光祖)등의 신진 사림파의 급진적인 개혁정책은 물론 위훈삭제, 현량과의 설치 등 사림파의 개혁정치에 반대하였다.

  1518(중종13) 찬집청당상으로 신용개. 남곤(南袞) 등과 함께[속동문선]을 편찬하였다. 1519년 심정(沈貞). 홍경주. 고형산高荊山) 등과 함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조광조(趙光祖)와 그의 신진 세력들을 숙청하는데 협력하였다. 남곤. 안당 등이 조광조일파의 사형에 반대하고 유배나 감형을 주장한 반면 그는 조광조를 거절하여 기묘사화에 참여한 공로로 그는 원종공신 되었고 우의정으로 승진했다가 1520(중종15) 의정부 영의정 겸 세자사가 되었으며 이요정의 [묘지명(墓誌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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