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
ㆍ작성자 서정
ㆍ작성일 2017-01-12 (목)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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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IP: 222.xxx.178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4. 조광조 개혁(改革政治)의 추진

 

  士禍로 잠시 주춤했던 士林勢力들은 鄕村사회에서 쌓은 기반을 바탕으로 중종 대에 다시 중앙정계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조광조의 빠른 승진이나 급진적 개혁이 가능했던 것도 모두 이런 사림파의 세력 확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종종의 강력한 뒷받침도 한 몫을 하게 되었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계속해서 공신세력(훈구)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있었는데 공신들을 견제할 목적으로 士林들을 적극 등용했던 것이다. 종종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조광조는 성리학의 이상정치(理想政治)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사림들은 이러한 왕도정치가 왕을 비롯한 지배층의 도덕적 실천과 함께 백성에 대한 도덕적 교화(敎化)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고, 그래서 먼저 왕에게 스스로 철인(哲人)이 되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특권을 누리며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훈구세력을 비판하면서 능력중심(能力中心)의 합리적인 관료체제(官僚體制)를 만들려고 하였다.

   또 소학(小學)실천운동과 향약(鄕約; 勸善懲惡相扶相助를 목적으로 만든 鄕村自治規約)복립 운동 등을 펼쳐 사회풍속을 바로잡으려 했다. 조광조는 새로운 관리등용(官吏登用)제도로 현량과(賢良科)를 실시하여 신진사류를 등용해서 유교정치 구현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1519(중종14) 처음 현량과가 실시되었을 때, 이를 통해 관직에 등용된 28명은 모두 士林과 관련 있는 사람들로서 사림들의 관계(官界) 진출통로(進出通路)로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소격서(昭格署)를 폐지할 것을 건의하자 영의정 정광필(鄭光弼), 좌의정 신용개(申用漑)를 비롯한 대소신료(大小臣僚)들이 이를 적극 찬동하여 왕의 부름을 받고 이를 논의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영의정 정광필. 좌의정 신용개. 우의정 안당(安瑭). 우찬성 최숙생(崔淑生).좌참찬 조원기(趙元紀) 등이 부름을 받고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은 다 이의(異意)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심정을 아셨으니 속히 혁파하여야 합니다.”하니, 전교하기를,“소격서는 좌도(左道)임을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므로 혁파할 수 없다고 여겼다. 지금 여정(輿情)을 보면 모두 혁파하고자 하니 여정을 따라야겠다. 단 혁파를 명하면 그 제사는 절로 지낼 수 없게 된다. 진설한 기구는 반드시 처치할 것이니, 위판(位版) 같은 물건도 꼭 묻어버릴 것은 없다. 경성 안의 사찰(寺刹)도 처음에는 모두 처치하게 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다 절로 폐지되었다. 또 방금 공청(公廳)을 짓고 있으니, 버려두고 구처하지 않으면 반드시 걷어다가 쓸 것이다.”하매, 정광필 등이 아뢰기를,“소격서의 노비(奴婢)는 불가불 계품(啓稟)하여 구처해야 하니 해사(該司)에서 스스로 적의하게 처치할 것이나, 사우(祠宇)의 위판 같은 물건은 버려두고 구처하지 않으면 이웃의 광패(狂悖)한 아이들이 반드시 다 훔쳐갈 것입니다. 그 위판을 깨끗한 곳에 묻도록 하소서. 또 소격서를 혁파하는 일은 곧 대간에게 하유(下諭)하시고 빨리 서경(署經)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하니, 전교하기를,

노비 및 쓰던 보물 등은 부득이 처치해야 좋다. 그러나 그 사우(祠宇)는 헐지 않고 공해(公廨)로 삼게 하는 것이 좋다.”


 

庚子/領議政鄭光弼左議政申用漑右議政安瑭右贊成崔淑生左參贊趙元紀等承召來啓曰: "臣等皆無異意已知群情, 宜速革罷" 傳曰: "昭格署, 非不知左道, 但其來已久, 故以爲不可革今見輿情, 皆欲革去, 當俯循輿情但命革則其祭祀, 自不得爲也其設陳之具, 必爲處置, 如位版等物, 亦不須埋置京城內寺刹, 其初亦皆不使處置, 而今皆自廢矣且今方搆造公廨, 置而不爲區處, 則必自撤取而用之也" 光弼等啓曰: "其署奴婢, 不可不啓稟而區處, 該司自宜處置若祠宇位版等物, 置不區處, 則隣里狂童, 必皆攘取其位版, 令淨處埋之且革去事, 卽諭臺諫, 令早署經可也" 傳曰: "奴婢及費用寶物等, 不得已當爲處置其祠宇則不毁, 而令爲公廨, 可也

 

  또한 미신타파에 힘쓰고, 향약(鄕約)을 실시하여 상호부조와 미풍양속을 배양하는 데 힘쓰는 한편, 교화(敎化)에 필요한 이륜행실 (二倫行實)과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 중국남송 때 주희<朱熹>가 주역)를 주역하고 첨삭(註釋添削)하여 김안국이 언해(諺解)한 여씨향약(呂氏鄕約)등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일련의 개혁조치를 통해 세력을 강화한 사림들은 마침내 위훈삭제(僞勳削除)주장을 들고 나와 훈구파를 정면으로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위훈삭제의 취지는 중종반정 때 공신으로서 누리던 각종혜택과 관직에 등용된 내력과 물질적 부의 진실을 명백히 밝히고 나아가 그로 인해 잘못 형성된 재산까지 모두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왕에게까지 몰아붙이며 개혁을 강행하려는 조광조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훈구세력들은 물론 중종의 불만까지 사게 되자 조광조를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지치주의 정치의 업적은 다방면에 걸쳐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의 이상주의적인 왕도정치(王道政治)는 구현과정(俱現課程)에서 저돌적이고 급진적인 면이 많아 도리어 증오와 질시를 사게 되었고 게다가 철인군주(哲人君主) 이론을 왕에게 역설하고 강요한 것에 중종마저 그의 언동에 점차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성리학을 지나치게 숭상하고 청렴결백과 원리원칙에 입각한 道學的인 태도를 보이면서 남곤. 이행(李荇) 등 사장파(詞章派)와 대립하게 되었고 기성세력들을 소인시(小人視)해온 훈구파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당시 반정중신으로서 조광조 등에 의해 탄핵을 받지 않은 중신들이 없을 정도였는데, 이때 반정공신(反正功臣) 위훈삭제사건(僞勳削除事件)을 계기로 조광조 일파에 대한 기성 훈구세력의 불평불만은 1519(중종14)에 폭발하고 말았다.

 

5.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事件)

 

  어느 날, 궁녀 한 명이 중종에게 이상한 잎사귀 하나를 바쳤다. 그 나뭇잎은 궁궐 정원에서 나온 것이라 했는데, 거기에는走肖僞王이란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벌레가 글자 모양대로 갉아먹은 것이었다. 나뭇잎에 새겨진 그 글자는 심정과 남곤 등 훈구세력들이 중종의 후궁이며 홍경주의 딸인 희빈홍씨(嬉嬪洪氏)와 함께 계략을 꾸민 것으로서 희빈홍씨가 궁녀를 시켜 나뭇잎에 글자 모양대로 꿀물을 발라 벌레가 파먹게 한 것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훈구파들은 왕에게 이 나뭇잎이야말로 조광조가 역모를 꾸며 왕이 되려는 증거 즉走肖僞王에서, ()()를 합하면가 되어 趙氏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라고 하고, 역모(逆謀)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그렇지 않아도 조광조의 독단으로 위훈삭제 문제로 심기가 상해있 던 중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광조를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홍경주. 남곤. 고형산. 심정 등은 밀의를 거듭한 끝에, 1519(중종14)11, 조광조 등 일파가 붕당(朋黨)을 만들어 중요한 자리를 독차지하고 임금을 속이고 역모를 꾸며 국정을 어지럽혔으니 그 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계를 올렸고 중종역시 홍경주 등의 주청을 받아들여 조광조 일파를 치죄(治罪)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李長坤. 安瑭. 鄭光弼 등이 이에 반대하였고 성균관유생 1,000여명이 광화문에 모여 조광조의 무죄를 호소하였으나 결국 치죄 후 조광조는 능주로 귀양가서 곧바로 사사(賜死)되었고, 김정. 기준. 한충. 김식 등도 귀양 가서 사사되거나 자결하였다. 그 밖에 金絿. 朴世熹. 朴薰. 洪彦弼. 李耔. 柳仁淑 등 수십 명 역시 귀양가고, 이들을 두둔했던 安瑭金安國. 金正國형제 등도 파직된 이 사건을 기묘사화(己卯士禍)라고 한다. 이를 계기로 조광조의 개혁정치는 막을 내리면서 이후 김전은 영의정, 남곤은 좌의정, 박유청은 우의정이 되었다

  1519(중종14) 103일 이요정 신용개가 좌의정(左議政) 현직에서 향년 57세로 세상을 떠난 뒤, 남곤 등이 11월에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파(士林派)들을 처참하게 제거하는 기묘사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요정이 세상을 떠난 이후이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만일 申用漑가 있었으면 반드시 진정시켜서 변이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당시 영의정이던 정광필역시그가 일찍 죽어서 나로 하여금 혼자 이 변을 당하게 되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신용개는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에서 완충역할을 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6.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대한 평가

 

  16세기 중반의 대학자이자 관료인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석담일기(石潭日記)]에서 조광조에 대하여;“옛 사람들은 반드시 학문이 이루어진 뒤에 이론을 실천하는데, 이 이론을 실천하는 요지는 왕의 그릇된 정책을 시정하는데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 다스릴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채 이뤄지기 전에 정치일선에 나간 결과 위로는 왕의 잘못을 시정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구세력의 비방도 막지 못하고 말았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이와 비슷한 시기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은 조광조에 대해 이이와 비슷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이런 말을 덧붙이고 있다.

(조광조)로 인하여 선비들의 학문이 지향할 바를 알게 되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나라의 근본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유학의 가르침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으며, 나라의 장래가 부강하게 되었다.‘사림의 화()는 애석한 일이라 할 수 있으나 선생의진정한 학문과 의 뜻을 높인 공로는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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