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
ㆍ작성자 서정
ㆍ작성일 2017-01-03 (화) 09:26
ㆍ추천: 0  ㆍ조회: 197       
ㆍIP: 222.xxx.249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연산군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비명에 죽은 생모 윤씨의 원한을 풀어주고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폐비윤씨를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숭하고 성종묘(成宗廟)에 배사(配祀)하려 하였으나 권달수. 이행 등이 반대하자 권달수는 참형당하고 이행은 귀양 보내졌다. 또한 성종이 윤씨를 폐출할 당시 이에 찬성하거나 동조한 윤필상. 이극균. 성준. 이세좌. 권주. 김굉필. 이주 등은 사형에 처하고, 이미 고인이 된 한치형. 한명회. 정창손. 어세겸. 심회. 이파. 정여창. 남효온 등 명신거유(名臣巨儒)들이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으며, 그들의 가족과 제자들까지도 벌하였다. 이 외에도 홍귀달. 주계군 등 수십 명이 참혹한 화를 당하였다.

  이 사건은 표면상 연산군이 생모 윤씨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벌인 살육사건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조정대신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을 연산군의 복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자하는 임사홍이 일으킨 사건이며 연산군의 비()인 신씨(愼氏)의 오빠이며 후에 중종의 장인이되기도 한 신수근(愼守勤)과 함께 무오사화 때 당한 원한을 갚기 위해 남은 선비들을 제거하기 위해 옥사를 꾸민 것이다.

  그 당시 신용개는 4년 전부터 언론을 담당하는 중요한 정무를 맡고 있었는데 바르고 강직하여 연산군 뜻에 따르지 않아 왕의 미움을 사고 있던 터였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자 성절사(聖節使)로 중국을 다녀오는 길에 관직을 삭탈당하고 전라도 영광(靈光)으로 귀양 보내졌다.

  갑자사화로 인하여 성종 때 양성한 수많은 선비가 수난을 당하여 유교적 왕도정치가 침체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연산군의 비행과 폭정을 비난한 한글 방서사건(榜書事件)이 발생하자 이들을 잡아들여 옥사를 벌였고 한글서적을 불태워 버리는 등 이른바 언문학대(諺文虐待)까지 자행되어 결국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하던 일부세력들에 의해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게 된 빌미가 되기도 하였다.

 

3. 중종반정(中宗反正)과 조정(朝廷)에 복귀

 

  150696일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지낸 성희안.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박원종. 이조판서(吏曹判書)유순정. 신윤무장군 등이 중심이 되어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 이역(李懌)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났다. 이때 신용개는 44세에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여 첨지중추(僉知中樞)를 제수 받은 얼마 뒤 형조참판(刑曹參判)으로 승차하고 이로부터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 홍문관제학(弘文官提學). 동지성균(同知成均)등 청관(淸官)을 겸했다.

  당시 문형(文衡)에는 오래도록 주인이 없었는데, 그때 조정의 모든 대신들이 신용개의 자질을 보고 추천하여 대제학(大提學)에 오르면서 지은 책으로 [응제십조서병서(應制十條書屛序)]가 있다.

  1507(중종2) 45세에 성희안이 주문사(奏聞使)가 되어 중국으로 고명(誥命)을 받으러 갈 때 신용개는 부사(副使)로 동행을 하게 되는데, 일행이 우가장(牛家庄)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물이 막 얼기 시작하여 건널 수가 없었다. 이때 이요정이 사초와 갈대를 베어 엮어서 강을 메워가며 건너는 묘안을 짜서 몸소 실행을 하니 성희안이 말하기를,“아래에 사람이 많이 있는데 어찌 부사가 스스로 이와 같이 하는가?”라고 하자,“왕명은 일정한 기한 내에 받들어 모셔야 하니 마땅히 자신이 먼저 하는 것.”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성희안도 따라하여 마침내 평평한 육지를 이루어 무사히 건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신용개는 고명을 받아온 공로로 임금으로부터 원종공신(原從功臣)호를 내리고 토지와 노비를 하사받는 한편, 이해 겨울에 공조판서를 제수 받았다. 그 당시에 지은 시를 여기에 옮겨본다.

 

                                                                                                                    단심경경발성성

단심은 더욱 빛나나 머리카락은 하얀데                           丹心耿耿鬂星星

                                                                                             삼일우장체원행

우가에서 삼일 묵어 먼 여정이 지체되었네.                       三日牛庄滯遠行

                                                                                              시월원하빙불합

10월의 요하(요동)는 얼음이 꽁꽁 얼지 않으니,                  十月遼河氷不合

                                                                                              각주무계득교성

배를 띄울 계책은 없고 다리를 이루었네                           閣舟無計得橋成


 


  1510(중종5) 48세에 예조판서(禮曹判書)를 제수 받았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해안에 몰려와 방화와 약탈을 일삼고 있던 왜인(倭人)들을 세종(世宗)께서는 삼포(三浦)를 정하고 그들이 그곳에 한하여 왕래하며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세종말엽에 왜인들이 늘어나면서 횡포가 잦아지면서 부산포까지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경상우도병마사(慶尙右道兵馬使) 유담연으로 하여금 2천의 군사를 보내어 三浦에서 왜인들을 모두 쫓아버렸다. 이후 일본은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와 화해를 청하자, 신용개가 실제로 의론(議論)을 담당하여 세선(歲船)을 감축시켜 왜인들의 활동을 제한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왜노송유변부의(倭奴送留便否議)]에 잘 나타나있다.

    1512(중종7) 문종왕비 권씨의 소능복위(昭陵復位) 문제가 성종 때에 김일손에 의해 상소를 올린 바가 있은 후, 58년 만에 다시 조정에서 제기되었는데, 三公 이하의 관원들은 반대하여 왔으나 신용개를 비롯한 강혼. 장순손. 김전 등은 복위를 주장했으나 시행되지 못하다가 그 뒤 [속삼강행실청(續三綱行實廳)] 동료들과 더불어 이요정의 간곡한 요청이 받아들여져 소능복위를 위한 도감(都監)이 설치되고 드디어 종결을 보게 되었고 1514(중종9)52세 때에 [속 삼강행실(續三綱行實)]찬진()을 맡게 되였다.

  1515(중종10) 봄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술을 아끼고 사랑하여 酒仙의 경지에 올랐던 신용개가 병조판서 시절, 온양으로 온천 나들이를 했다가 천안에 들러 官妓 사덕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는데, 그 뒤 사덕은 그날 밤을 잊지 못하여 신용개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대감께서는 묘기가 옛날 양유기의 백보 밖에서 버들잎을 맞히는 활솜씨를 능가하고, 그 웅대함은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합니다. 그 잘생긴 것은 뭇 닭 중의 한 마리 학 같고, 그 굳센 것은 사람 가운데 용 같습니다. 일찍부터 태평한 마을에서 마음껏 달리고 어지러이 온유향을 드나드니 그 뛰어난 풍정을 어찌 이루 형용하리까. 아리따운 기생이 모두 따라옵니다. 동방에서 춘정이 무르익고, 원앙금침에 사랑하는 몸을 떼기 어렵습니다.”

 

이듬해에 우의정에 오르고, 영경연사와 감춘추관사를 겸임하였다. 1518(중종13)봄에 좌찬성에 오르고 여름에 우의정에 이르면서 겸직인 대제학을 사임 하였다. 기품이 높고 총명하여 문명(文名)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활쏘기 등 무예(武藝)에도 뛰어나 문무(文武)를 겸비(兼備)하였으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인품 또한 대범하고 호협하며 꿋꿋하여 범하지 못할 점이 있어 당시 선비들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0
3500
    N     분류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49 만대산정기품고 만대연물길 흘러. 청풍명월 2018-04-09 18
648 존경하고 사랑하는 高靈申氏大宗會 會長과 宗親 여러분!!! 신철호 2018-02-25 73
647 의견 숙주나물 명칭의 유감 서정 2018-02-19 79
646 일반 존경하고 사랑하는 高靈申氏大宗會 회장과 종친 여러분!!! 신철호 2018-02-16 50
645 죽당 신유 선조님이 지은 죽당유고 번역계약 체결하였습니다. 병암 2017-11-21 74
644 제 오빠가 이번에 와세다대 일본국비 장학생으로 갑니다. [2] 신효식의 2017-10-27 118
643 요청 청주 구봉영당에 소장되어있는 '신숙주 초상'을 보고싶습니다. hge 2017-09-13 109
642 요청    Re..청주 구봉영당에 소장되어있는 '신숙주 초상'을 보고싶습니.. 관리자 2017-12-29 58
641 내가 이런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도의길 2017-08-19 115
640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위하여. ... 정도의길 2017-08-12 100
639 우째 이런일이 있나요? 정도의길 2017-08-11 145
638 국역 이요정집 출판 계약 체결 병암 2017-07-06 87
637 ★ 종중 소유토지(임야) 임대 제안드립니다. 한마음 2017-04-28 163
636 신승구 공이 지은 석헌섬예 등 번역계약 체결 병암 2017-04-13 137
635 신좌모 공이 지은 담인집 번역계약 체결 병암 2017-04-04 131
634 3월 5일 해주최씨 조상연구회원 양평 수대신씨 전시회 방문 견.. 병암 2017-03-15 158
633 영천자 신잠 선생이 지은 영천집 번역계약 체결 병암 2017-03-08 126
632 여암 신경준 선생이 지은 여암유고 번역계약 체결 병암 2017-03-08 140
631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2-17 214
630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2-06 145
629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2-02 157
628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26 199
627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 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20 131
626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20 148
625 여암 신경준공의 역주 가람고 신간 안내 병암 2017-01-18 192
624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16 225
623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12 189
622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09 218
621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07 232
620 조선 전중기의 명신(名臣)신용개(申用漑)이야기 서정 2017-01-05 158
123456789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