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운영자
ㆍ작성일 2007-07-11 (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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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 유허비(대전소재) 재 제작안 결정
o 단재 신채호선생 유허비(대전소재) 재 제작안 결정

7월 10일 회장단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비문안을 변경하여 재 제작하기를 의결하고 동 내용이 대전시청(문화예술과)에서 확정 되는대로 비의 크기가 180㎝정도 되는 규격으로 재 제작건립 예정임

다 음

丹齋 申采浩先生 遺墟碑

日本 帝國主義者들이 우리나라의 國權을 侵奪한 36年間, 祖國의 光復을 위하여 獨立鬪爭을 이끈 가장 우뚝한 先烈이 있으니 그 분이 바로 丹齋 申采浩先生이다.
先生의 本貫은 高靈이다. 高靈申氏는 高麗 중엽 文科 檢校軍器監을 지낸 申成用公을 始祖로 하고 8世 文忠公 申叔舟先生에 이르러 門閥이 크게 繁昌하였으며 丹齋先生은 한글창제에 공이 컸던 文忠公 保閑齋 申叔舟先生의 18代孫이다.
先生은 1880年 12月 8日 忠淸南道 大德郡 山內面 於南里(桃林)에서 가난한 선비 申光植公과 密陽朴氏 사이에 둘째아들로 태어나 궁핍한 幼年期를 陳外家인 이곳安東權氏村에서 보냈다.
1887年 父親이 別世하자 先生은 先祖들이 代代로 살고 있던 忠淸北道 淸原郡 琅城面 歸來里(고두미)로 이사하여 漢學을 修業했고 1895年 國母 弑害事件이 일어난 뒤 國運이 危急하게 됨을 보고 先生은 1898年 故鄕을 떠나 上京, 成均館에 들어가 學問을 닦으면서 新風을 일으키기 7年, 成均館博士가 되었으나 現實에 安住하기 보다는 國民思想의 改革과 國權守護가 急先務라고 생각한 先生은 博士를 사퇴하고 1905年 <皇城新聞>과 <大韓每日申報>의 主筆을 歷任 하면서 峻烈한 無冠의 言官, 史官으로서 韓末의 風雲과 겨루어 나갔다.
그러나 머지않아 日帝에게 國權을 빼앗길 것을 直感한 先生은 1910年 國外로 亡命하여 1918年까지 沿海州에서 光復會副會長, <勸業新聞> 主筆을 歷任하면서 銳利한 筆鋒으로 民族의 團結을 강조하고 獨立運動의 正道를 밝히며 同濟社, 大韓獨立靑年團등의 組織에 참획하였고 <大同團結의 宣言> <大韓獨立宣言文> 등을 起草 發表하였다.
先生이 亡命한 뒤 上海로, 北京으로, 滿洲로 數萬里를 遍踏하면서 첫째 所願은 祖國의 光復이었고 다음은 日帝植民史觀에 의해 抹殺되어가는 民族史의 根源을 찾아 檀君 이래 脈脈히 이어온 民族正氣를 千秋에 傳하고자 함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때 묻은 靑布 하나 몸에 걸치고도 웃으면서 滿洲 各地를 누볐고 우리나라 옛 疆域을 찾아 廣開土大王碑 探査를 비롯해 우리 歷史에 關係된 史蹟을 探究하는데 온 힘을 기우렸다.
1919年 上海에서 臨時政府가 서게 되자 先生은 臨時議政院 議員, 全院委員長 등을 歷任하며 獨立政府의 方向을 提示했고 <新大韓>의 主筆로 獨立運動의 精神과 理念的 指標를 제시하는 동시에 國民에게 올바른 歷史意識을 일깨우는데 힘썼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最初의 史論이라 할 <朝鮮上古史> 總論에서 先生은 歷史를 <我와 非我의 투쟁의 기록으로 파악하여 我는 곧 韓國民族이었고 非我는 異民族이었으니 先生의 韓國史는 韓民族과 異民族의 鬪爭史>로 定義하였다.
1920年에서 1927年 사이 先生은 對日武力抗爭의 計劃으로 北京에서 軍事統一策進會를 組織하고 第二의 普合團을 조직하였으며 委任統治請願을 痛駁하는 <聲討文>과 義烈團의 <朝鮮革命宣言>을 起草 發表하는 한편 無政府主義東方聯盟에 참여하는 등 보다 積極的인 獨立 爭取運動에 獻身하였다.
1928年 抗日獨立鬪爭의 일환으로 國內에 獨立運動의 宣傳機關을 설립하고 日本人 建築物을 파괴할 爆彈製造所를 設立할 資金 마련을 위해 臺灣으로 가서 基隆港에 上陸直前 日警에 被逮되어 大連監獄에 未決囚로 收監되었다. 投獄 중 公判審理에서 先生은 日本帝國主義制度의 不當함과 弱小民族인 韓民族의 未來를 위하여 獨立運動을 단행한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1930년 5월, 10年의 實刑을 言渡받고 旅順監獄으로 移監되어 受刑生活을 하던 中 1936年 2月 21日(음 1月 28日) 57歲를 一期로 獄中에서 殉國하였다.
先生은 偉大한 獨立運動家일뿐 아니라 卓越한 民族史學家로서 <讀史新論> <朝鮮史硏究草> <朝鮮上古史> 등 不朽의 名著를 남겼고 또한 <伊太利建國三傑傳> <乙支文德傳> <李舜臣傳> <崔都統傳> 등 傳記와 小說 <꿈하늘> <龍과龍의 大激戰> 그밖에 많은 글들을 남겼다.
先生의 遺骸는 家族들의 손으로 鄕里에 奉還 安葬되었고 1962年 政府에서 大韓民國建國功勞勳章 大統領章이 追敍되었다.

壯하여라 獨立精神, 永遠하리 民族史觀. 繁榮된 이 나라 便安한 삶 누리는 것은 모두가 先生의 밑거름 德이었음을 우리 모두 記憶하노니 그 高貴한 뜻 千歲 萬世에 빛날 것이다.


2007年 9月 日

高靈申氏大宗會 會長 申 寬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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