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02-05-16 (목)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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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川君 墓所 移葬(文忠公 保閑齋의 第 四子)
文忠公 保閑齋의 넷째 아드님이신 諱瀞(高川君)의 墓所가 지금까지는 京畿道 始興市 秀岸面 論谷마을에 모셔져 있었으나 산소 인접까지 주택이 밀집하고, 산소의 토질이 황폐하여 위용이 초라할 뿐 아니라, 불운하게 돌아가신 당신의 한 맺힌 이곳 墓를 더 좋은 곳으로 옮겨 드리는 것이 후손들의 도리임을 종중의 중론에 붙여, 2002년 3월 28일 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동 궁촌마을 뒷산으로 移葬하여 오랜 숙원 사업을 끝맺었습니다.

公은 1442년 세종조에 서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나고 문예가 출중하여 부모로부터 총애를 맞았으며, 세조 12년 약관 24세로 문과에 등제하고 이듬해 예문관, 직제학을 거쳐 1469년 예종 원년에는 27세 나이로 병조참의, 1470년에는 동부승지 및 좌부승지, 성종 2년에 도승지가 되셨다가 부친 文忠公의 병환이 위중하여 일시 사직하고, 병구환과 종신 끝에 상을 치른 후 5년이지나, 성종 12년에 평안도 관찰사로 특배 받는 등 승승장구 하셨으나, 뜻하지 않게 몇몇 가종들이 관인을 위조한 매직음모사건을 빌미로 공을 시기하는 반당의 무리로부터 공이 연루된 사건으로 유죄를 강력히 간하였으며, 오히려 왕은 공의 평소 강직함과 고평무사함을 아는지라 임지로 부임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공이 도리어 결백함을 끝까지 고집하고 진위를 밝혀 줄 것을 상소하므로 조정이 갑론을박 끝에, 무복한 공에게 1482년 성종 13년 4월 사약을 내리시고 40세의 나이로 억울한 생을 마치신후 지금까지 520년간 시흥시 논곡동에 외로이 잠드셨습니다.

12년 후에는 공의 억울함과 공신 반열의 공을 높이사, 복관을 명받고 불천지위의 명도 함께 받아 배위정경부인 完山李氏(태종의 손녀)와 함께 지금까지 모셔져 왔습니다.

오늘에야 비로서 공의 아버님 文忠公 내외분의 유택이 모셔진 議政府市 송산동 산록에 늦게나마 부모님의 품 가까이 모시게 되었으며, 공의 직손(아드님과 고손까지)이 묻혀있는 의정부시 송산동 궁촌마을 뒷산 상좌 한 곳을 택하여 안좌하시니, 500여년의 한을 다소나마 풀으시고 직손들과 오랜만에 한 곳에서 오래토록 영민 하시어 우매한 후손들을 보살피고 어루만져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2002년 2월 28일
고천군파, 範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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