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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공파

 

파조의 출생

감찰공의 휘는 梯제, 자는 이섭(利涉), 호는 회현이며 1393년(조선조 태조 2년)에 6세 포시공(包翅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443년(조선조 세종 25년) 정월 1일에 돌아가시니 51세이셨다.

 

파조의 관력

벼슬은 문음(門蔭)으로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에 오르시어 감찰공이라 한다.

 

세의 확장

영광유씨 유두명(柳斗明)의 따님과 결혼하였으며, 해주 최씨를 맞이했는데 전서를 지낸 최발(崔跋)의 따님이었습니다.

아들 4형제와 두딸을 두었는데 장남인 자교(子橋)는 문과에 올라 사성(司成)을 지냈고, 차남인 자강은 인천부사, 3남 자동은 사정을 지내셨습니다.

단종손위때 맏아들 자교가 병을 이유로 남원으로 퇴거하였음으로 일부 후손들이 그곳에 정착하였으며, 일부는 차남 자강이 인천부사 에서  

물러나 전남 구례로 퇴거한 뒤 고흥ㆍ순천 등지로 옮겨가 세를 누렸습니다.

특히 고흥지방에 터를 잡은 분는 부사공 자강의 아들인 9세손 제주공 석(碩)을 비롯하여 임진왜란때 초대 거북선의 선봉장이였고 이순신이 전사하자 실질적 수군통제사가 되어 혁혁한 공을 세운 14세손 여량(汝樑)을 비롯하여, 여주ㆍ여정(汝楨)ㆍ백헌ㆍ명선ㆍ명진공ㆍ농산(農山ㆍ得求)공이 유명하며 특히 농산공 得求는 많은 저술을 남긴 대학자로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여 문불여신농산(文不如申農山)이라는 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관련정보]

묘 : 남원시 고죽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