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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헌공파

 

파조의 출생

파조의 휘는 檣장 이며 호는 암헌입니다.

고려 우왕 8년 2월 23일 남원의 호촌에서 6세 포시공의 큰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13세때 부시(향시)에서 장원으로 뽑혀 전라관찰사등 여러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태종 2년 문과 제4과로 급제하였는데 글씨를 잘 쓴 사람에게 장원을 주라는 왕의 명령으로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파조의 관력

태종 6년 주서를 시작으로 예조정랑, 춘추기사관, 이조정랑을 지내다 태종 11년 어떤 사정으로 처향인 나주의 금안동으로 내려가 후진들에게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다시 벼슬길에 올라 지승문원사, 세종2년에 집현전 직제학, 부제학, 세자좌보덕을 겸했습니다.

그뒤 좌군동지총제와 집현전 제학 등을 지내면서 정종실록, 태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세종 13년에는 공조참판, 공조좌참판을 지내다 세종 15년(1433) 2월 8일 현직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조의 주요업적

세종때 팔도지리지를 만들었으며 특히 명필이어서 승례문 편액, 기자묘비, 임씨가묘 등도 쓰셨는데 그 글씨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세의 확장

금성정씨 (지금의 나주정씨) 지성주사 유의 따님과 결혼하여 아들 5형제와 두딸을 두었으며, 특히 아드님중 셋째이신 문충공이 출세하여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관련정보]

묘 : 경기도 파주시 금촌읍 검산리(신장메)

인물정보 : 암헌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