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씨는 5세~7세에 이르러 씨족의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이중 5세,6세 때에 씨족의 기틀이 다져지는데, 이는 과거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처럼 과거응시자격에 엄격한 제한이 있어 우선 8세조까지의 호적에 천인이 없어야 하고, 시험보기전 가족사항을 적은 `행권가장`을 예부공원에 제출하여 통과되어야 했습니다. 또 수험자는 본관과 아버지ㆍ조부ㆍ증조부ㆍ그리고 외조부 등 4대조의 이름을 시험지에 적어내야 했습니다. 3세 인재, 4세 사경, 5세 덕린 등 선조는 6세 포시공께서 제출한 '행권가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치일재(5~6세조 재실)

숭례문 편액(암헌공 친필)

  

5세 순은공은 충정왕때, 6세 호촌공은 우왕때 과거에 급제했으므로 고령신씨가 상당한 가문임이 입증이 되었고, 답안지에 써낸 4대조의 이름으로 계대가 세상에 알려졌으니 씨족의 기틀을 다진 고마우신 선조입니다.

 

이후 6세 호촌공의 세 아드님이신, 7세 암헌공, 정은공, 감찰공이 크게 출세하고 자손이 번창하여, 계파가 나뉘고 씨족이 전국으로 세를 확장하게 되었으며, 시중공파와 더불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즉, 7세 이후로 본격적인 씨족의 발전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